얼마전 10월 10일은 사회주의 국가 라오스에 자본시장의 닻을 올린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인구 6백만 세계 최빈국 라오스에 한국은 뛰어난 IT기술을 무기로 지분 49%의 합작법인 라오스증권거래소를 2010년에 개설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주류 선진국들이 경쟁하는 자본시장 생태계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이 해외 자본시장에 진출하여 합작거래소를 만들었다는 것은 국가적 쾌거였고, 해외에서도 큰 화제꺼리였다.
당시 라오스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도 드물었다. 직행 비행 노선 하나 없었고, 찾는 이도 많지 않았다. 동남아에서 가장 조용한 나라로 코끼리처럼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바다가 없어 메콩강을 바다로 생각하며 평온이 깃들어 있는 불자의 땅.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비행기 직행 노선은 물론 수백만명이 찾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더구나 한국인들에게는 겨울철 가장 선호하는 골프여행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라오스는 지난 10년 동안 연 6%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1인당 국민소득도 2천 달러를 넘어섰다. 상장회사도 11개로 늘어 시가총액이 9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과의 고속철도사업도 한창 진행되어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명한 관광지인 방비엥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도 금년말이면 끝나 4시간 걸리던 거리가 1시간으로 단축될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 국가부도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라오스의 신용등급을 기존 B등급에서 CCC로 낮추었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부진과 과도한 해외부채가 주요 요인이다. 과거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지만 상장회사의 실적은 매년 악화되어 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몇몇 회사는 주요사업을 정리하고 있어 투자자 피해가 예상되고 있는 실정이다. 10년 전 힘차게 출발했던 자본시장이 정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라오스에서 자본시장은 성공할 수 없는 것인가? 양질의 기업과 투자자 저변확대는 불가능한 것인가?
그러나 눈여겨보면 꽤 쓸 만한 회사는 있다. 라오스인이 밤새 마시는 비어라오, 누구나 사용하는 라오텔레콤 등...
하지만 좋은 회사는 상장을 꺼리고 있다. 그래서 정부관료나 경영인을 만나면 자본시장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그리고 상장 필요성을 설득하곤 한다. 경제는 돈줄이며, 자본시장의 거대한 자금줄 없이는 라오스 경제의 부흥도 어렵다고,.. 무상원조로는 입에 풀칠은 하지만 부자를 만들어주지 못한다고,... 지금이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해 메콩강의 기적을 불러올 적기라고,... 한강의 기적도 자본시장이 큰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한국이 있게 되었다고...거의 전도사처럼 부르짖고 있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현재 기관투자자는 전무한 상태다. 소형 은행들과 3개 증권회사가 다인데, 이들의 기관투자자 기능은 없다. 라오스 국민들은 주식을 소유하면 팔지를 않는다. 그냥 채권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자처럼 배당만 바라본다. 주가차익을 챙기려고 단기에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 시장활동 계좌수가 점점 줄어 지금은 2천개도 안되고 있다. 일일거래량도 감소하여 시장의 유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자본시장의 본원적 기능인 환금성과 공정가격결정의 기능이 위협받고 있다.
향후 10년을 바라보아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쩌겠는가? 내일 일도 모르는 판에, 10년 후를 누가 알겠는가? 라오스 정부 당국자들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증권관리위원회 멤버로 모든 부처의 차관이 들어갈 만큼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합작파트너인 한국의 지원이 더 절실하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이웃 베트남이나 태국처럼 이렇다할만한 한국기업이 진출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더구나 일반 기업이 아닌 자본시장의 핵심인프라를 한국이 구축했다는 사실은 손익여부를 떠나 이곳 교민들이나 한국에게 큰 자부심이 아닐 수는 없다. 알게 모르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또 다른 나라에 자본시장 콘텐츠를 이식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그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곳 비엔티안 영자신문에는 매일 어느 나라에서 얼마를 지원했다는 것이 헤드라인 기사다. 일본이나 유럽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기관이름도 자주 오르내린다. 의료지원사업이며 장학금지원 사업 등 한 해에 적어도 수백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저개발국 지원에 성의를 다하는 모습이다. 라오스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돈은 어쩌면 다 원조라고 볼 지도 모른다. 한국은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라오스는 원조라고 여기는 커다란 차이....매년 적자로 한국에서 들어오는 운영자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보다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이 제공한 IT 시스템이 용케도 10년을 버텼다. 큰 사고 없이 10년을 버틴 것이다. 앞으로도 10년을 더 버텨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정부 당국이 법을 뜯어고쳐서라도 자본시장 활성화에 사활을 건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장회사가 100개가 넘고 일일거래량이 천만주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라오스정부당국자의 소망처럼 라오스가 동남아 최고의 자본시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만 된다면 과거 10년의 과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우리는 늘 미래에 모든 것을 걸고 사니까...
칼럼: 황의천 라오스증권거래소 C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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