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산업부 김민수 기자와 함께 더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27년 정말 삼성은 눈부신 도약을 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된 그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면 될까요?
<기자>
찬사와 질타가 엇갈리지만 한국사회에서 삼성은 단순한 기업 이상의 특별한 존재인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그 특별함의 상당 부분이 이건희라는 경영자에서 기인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87년 취임하면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상장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87년의 삼성이라면 다소 허황된 소리로 들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27년은 삼성을 한국의 기업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신시켰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 매출은 2018년에는 386조원을 넘기면서 40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400배 가까이 커졌습니다.
<앵커>
우리가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쥐고 나서 삼성은 괄목할 만한 변신을 했습니다.
그 변신은 `초일류`라는 단어 하나로 압축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자신 만의 경영철학으로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끌었습니다. 이건희 회장 발자취 소개해 주시죠.
<기자>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사람들이 이건희 회장을 기억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문장일 겁니다. 바로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에서 한 말인데요.
사실 이 회장은 공개적인 자리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말을 아껴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습니다. 그런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 처음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가 바로 이 신경영 선언입니다.
양적인 경쟁 위주에서 품질 위주로 변신해야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주문이었습니다. 1995년 구미공장에서 불량률이 높았던 무선전화기를 모아 화형식 가진 것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널리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이 회장은 늘 위기의식을 통해 삼성그룹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신경영 선언 10년 후에는 `위기의식 재무장`을 주문했고, 신경영 선포 20주년에도 "20년이 됐다고 안심해서는 안 되고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다시 고삐를 쥐었습니다.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이 회장의 디자인 경영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96년 신년사에서 "올해를 `디자인 혁명의 해`로 정했고 2005년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디자인 전략회의를 열고 `제2의 디자인 혁명`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장이 쓰러진 해죠. 2014년에는 신년사를 통해 `마하경영`이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려면 설계도는 물론 엔진·소재·부품을 모두 바꿔야 하는 것처럼 삼성이 초일류기업이 되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인데요.
지금 삼성의 초격차 전략의 토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은 후대에 반도체라는 굵직한 선물을 안겨주고 떠났습니다. 또 반도체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휴대전화 사업에도 뛰어드는 혜안을 보여줬죠?
<기자>
지금의 삼성 반도체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기틀을 만든 건 바로 이건희 회장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은 당시 선친인 이병철 회장의 반대에도,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삼성 반도체 신화`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처음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이병철 선대 회장도 이 회장의 설득으로 1983년 도쿄선언을 통해 반도체 사업 진출 공식 선언하게 됩니다.
1989년까지는 삼성은 D램 시장에서 일본 도시바와 NEC,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이어 4위에 머물렀지만,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램을 개발하고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라섰습니다. 이후 D램 시장에서 28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을 기억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애니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신경영선언 이듬해인 1994년 삼성은 첫 휴대전화로 국민 휴대폰을 탄생시키면서 애니콜 신화를 쓰게 됩니다.
애니콜로 시작된 모바일 디바이스 제조기술은 이후 스마트폰 갤럭시 성공의 기반이 됐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하면 인재경영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S급 인재라는 말도 처음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인간 중심의 경영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개해주시죠.
<기자>
단편적인 일화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고등학교 친구인 홍사덕 전 의원은 고등학생이던 이 회장이 "나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가장 많이 한다"고 말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회장은 어릴 적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었지만 사람을 보는 눈 만큼은 남달랐다고 합니다. 이 같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은 인재경영의 바탕이 됐습니다.
임직원들을 뽑을 때 직접 면접을 6~7시간씩 하기도 했고, S급 인재를 뽑아오라며 사장들을 다그친 사례는 유명하죠.
항상 일류를 외쳤던 이건희 회장이기에 사람들은 고인의 인간 중심 경영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오해를 받는 부분이죠.
93년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요약해 교육용으로 만든 책자가 있는데, 전체 236페이지 중 처음 96페이지가 인간미, 도덕성, 에티켓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떻게 비용을 줄이고 어떤 제품을 개발할 지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접근법을 강조한 겁니다.
그런 기본과 메뉴얼에 충실한 인간 중심의 경영은 지금 위기에 강한 삼성을 만드는 토양이 됐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면서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을 이끄는 `이재용 시대`가 본격 개막했습니다. 이 회장이 별세하며 삼성 총수 일가가 이 회장이 보유하던 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지배구조 변화에 재계 안팎의 관심이 리는데요.
<기자>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것은 상속 문제일 겁니다. 지배구조와도 어느 정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복잡한 상황이 펼쳐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고 이건희 회장이 보유란 주식 평가액만 약 18조입니다. 부동산이나 기타 개인재산은 뺀 겁니다.
주식으로 이뤄진 굵직한 재산들이 모두 상속세법상 최대주주 할증 대상인데, 상속세만 10조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 가운데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 때문에 지배구조 손질은 불가피합니다.
이미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지만, 주력인 삼성전자 지분은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보험업법 개정안과 맞물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의 시발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4세 경영’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맞물려 이참에 지배구조 문제를 조금씩 정리하라는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비롯한 가족들은 당당하게 적절한 상속세를 납부하는 형식으로 상속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입니다. 상속세를 나눠내는 연부연납 제도도 활용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한 재판이 시작된 만큼,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지배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는 이건희 회장을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이재용 부회장은 두 개의 재판을 받으면서 경영권 방어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