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앤드루 쿠오모(63) 미국 뉴욕주지사가 결국 불명예 퇴진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잘 이끌어 `팬데믹 영웅`으로 떠오른 지 1년여 만에 유례없는 속도로 급추락하면서 4선 주지사의 꿈도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쿠오모 주지사는 10일(현지시간) TV 생중계 연설을 통해 "나는 뉴욕을 사랑하고, 뉴욕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며 "업무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사퇴 시점은 14일 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는 쿠오모 주지사가 전·현직 보좌관 11명을 성추행 또는 희롱했다는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의 보고서 발표 후 1주일 만에 이뤄졌다.
지난 3일 공개된 보고서에는 쿠오모 주지사가 피해 여성들에게 원하지 않는 키스를 강요하고, 신체를 만지고, 성적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과 협박을 일삼았다는 진술이 자세히 적혔다.
이로써 뉴욕주에서는 두 명의 선출직 주지사가 연속으로 `성 스캔들`에 휘말려 중도에 하차하게 됐다. 앞서 2008년 엘리엇 스피처 당시 주지사는 고급 매춘조직 고객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데이비드 패터슨 부지사에게 자리를 넘기고 물러났다. 바로 다음 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후임자가 쿠오모다.
`부적절한 신체 접촉은 없었다`며 사퇴론을 거부해온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도 제기된 의혹을 부인하면서 개인적인 문제로 뉴욕주 행정이 마비되는 불상사를 피하고자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 본능은 이번 논란에 맞서 끝까지 싸우라고 한다. 왜냐면 정치적인 동기를 가진 조사이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상황이 몇 달에 걸친 정치적, 법적 논란을 만들어냈고, 수백만 달러의 혈세가 낭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지사직을 유지하면서 "정략적인 공격"에 맞서 싸우면 주정부가 마비될 수 있기 때문에 "(주정부를)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내가 물러나서 주정부가 정상적인 정부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자신의 세 딸을 언급하면서 "내가 고의로 여성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여성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한 적이 결코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딸들이 진심으로 알아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다만 성추행 피해자들에게도 "너무 가깝게 생각했다. 불쾌한 마음이 들게 했다"라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어 쿠오모 주지사는 "내 생각에 난 누구에 대해서도 선을 넘은 적이 없다"며 "그러나 난 그 선이 어디까지 다시 그려졌는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3선 주지사인 쿠오모의 사임은 첫 임기가 시작된 2010년 이후 10년 만이자, 전직 보좌관 린지 보일런의 폭로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주 검찰 보고서 공개 직후 오랜 친구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등을 돌리고 사임을 요구한 데 이어 뉴욕주 의회의 탄핵 진행과 여러 카운티 지방검찰의 조사 착수로 압력이 더 커지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주 하원은 성추행 스캔들은 물론 요양원 사망자 수 은폐 의혹까지 포함하는 탄핵조사의 막바지 단계로 전해졌다. 탄핵심판이 열릴 주 상원 관계자도 이미 `유죄`를 선고하기에 충분한 표를 확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버티다가는 1913년 윌리엄 설저 이후 100여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탄핵당하는 뉴욕주지사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날 사퇴 선언에 피해자와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보일런은 트위터에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선 다른 여성들을 경외한다"고 적었고, 또 다른 피해자 아나 리스는 "집에 가라, 가버려라, 안녕"이라는 자막의 리얼리티쇼 화면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제임스 총장은 "정의를 향한 중요한 단계"라고 평했고, 척 슈머(뉴욕)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뉴욕 주민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내년 말까지 쿠오모 주지사의 남은 임기 동안 캐시 호컬(62) 부지사가 뉴욕주를 이끌게 된다. 뉴욕에서 여성 주지사가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호컬 부지사는 트위터를 통해 "쿠오모 주지사의 사임 결정에 동의한다"며 "그것은 올바른 일이며 뉴욕 주민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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