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거세지면서 코스피 지수가 연일 급락했다. 올들어 지난주까지 외국인 매도액은 작년 한 해 규모를 넘어섰다. 일각의 우려대로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본격적으로 떠나는 것일까? 한국 경제와 증시가 당면한 다섯 가지 궁금증을 풀어보면서 그 답을 구해보기로 한다.
첫째, 코로나 사태 이후 동학개미 비중이 커졌는데 외국인의 영향력은 여전한가 하는 점이다. 올들어 국내 증시에서 시장 참여자별 영향력을 알 수 있는 피어슨 상관계수(투자자별 일일 순매수 규모와 해당일 코스피 지수 간 변화율을 나타내주는 -1∼+1 범위의 값)를 구해보면 외국인은 +0.6으로 높게 나온 반면 동학개미는 -0.7로 낮게 나온다. 동학개미들이 세력화되지 못하고 있음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둘째, 외국인 이탈자금의 원천별로 보면 달러계 자금이 주도하고 있는 점이다. 연초 이후 미국의 S&P 500지수와 코스피 지수 간 상관계수를 보면 +0.8로 2019년 +0.1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반면에 중국의 상해지수와는 +0.8에서 +0.2로 낮아졌고, 홍콩 항생지수와는 -0.3으로 아예 역관계로 돌아섰다. 세계 금융거래가 뉴욕으로 집중되고 우리 수출도 중국에서 미국으로 재편되는 결과로 풀이된다.
셋째, 외국인은 한국 경제와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표기업 주식을 파느냐 하는 점이다. 달러계 자금의 벤치마크인 모건스탠리케피털지수(MSCI)에서 한국의 지위는 ‘신흥국’이다. 달러계 자금이 신흥국에 투자할 때에는 국가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투자 대상국의 대표기업 주식을 살 수밖에 없고 팔 때에도 이들 주식에 집중되면서 주가가 급락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올들어 외국인 매도과정을 되돌아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결정 이후 매도세가 더 강해지느냐 하는 점이다.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굴기 경쟁을 감안하면 가석방은 너무 안이한 결정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수시로 나가야 할 해외 출장 등을 법무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사법적 리스크는 더 커졌다고 보는 것이 외국인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다섯째, 외국인 자금이탈과 원·달러 환율 상승 산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주말 원·달러 환율은 작년 9월 이후 11개월 만에 최고치인 1,169원대로 급등했다. 만의 하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다면 ‘제2의 외환위기’ 우려가 급부상할 수 있을 만큼 외자 이탈 방지 차원에서 빠르면 이달 중이라도 금리를 미국보다 먼저 올려야 한다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신흥국 입장에서 외자이탈 방지의 최선책은 충분한 외화를 쌓는 일이다. 한국은 통화스와프와 같은 제2선 자금까지 포함하면 가장 넓은 의미의 캡티윤 방식으로 추정한 적정수준보다 보유 외화가 많다. 오히려 성급하게 금리인상을 단행하다간 ‘외자이탈→금리인상→실물경기 침체→추가 외자이탈’ 간 악순환 고리를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5대 궁금증을 풀어본 결과를 토대로 외국인 자금이 언제 추세적으로 돌아올 것인가를 예상해보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탈을 주도하고 있는 달러계 자금은 펀더멘털과 포트폴리오 면에서 우리가 미국보다 더 불리하다. 전기대비 연율로 통계방식을 통일해 지난 2분기 성장률을 비교해 보면 미국이 6.5%로 한국의 2.8%에 비해 월등히 높다.
반도체 업황에 대해서도 양대 글로벌 투자은행(IB)가 보는 시각이 대조적이다.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시장에 어두움이 몰려오고 있다“고 예상한 반면 골드만삭스는 ”마진폭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통계기법 상 절대 오차율 등으로 두 기관의 예측력을 평가해 보면 모건스탠리가 더 높게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이번주에는 나라 안팎으로 통화정책과 관련된 중대한 일정이 예정돼 있다. 하나는 26일에 있을 ‘금융통화위원회’고, 다른 하나는 같은 날부터 2박 3일 간의 일정으로 열리는 ‘2021 잭슨홀 미팅’이다. 양대 일정의 결과에 따라 한국과 미국 증시를 비롯한 금융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8월 금통위에서는 일찍부터 금리인상이 예고돼 왔다. 지난 5월 금통위 직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당분간’ 발언을 놓고 2014년 3월 첫 여성 의장의 취임했던 재닛 옐런이 ‘상당기간’이 6개월이라고 한 점을 감안해 이보다 짧은 8월이나 10월, 11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을까 예상됐기 때문이다.
금리인상 필요성은 ‘물가 안정’보다 위험수위에 도달한 가계부채와 자산 거품을 잡기 위한 ‘금융시장 안정’ 목적이 크다. 가계부채 주범이 주택담보대출인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 대책의 성격도 강하다. Fed의 테이퍼링이 예고돼 있는 만큼 외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요인도 가세되고 있다.
고민해 봐야 할 것은 가계부채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한 상황에서는 금리를 올리면 코로나 사태로 상흔 효과(scarring effect)가 큰 소상공인과 젊은 세대들에게 피해가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 입장에서는 외자 이탈 방지의 최선책도 금리인상보다 외화를 충분히 쌓는 일이다.
외화보유고 확충은 1990년대 이후 중남미 외채위기, 아시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신흥국들이 외부 요인에 의한 각종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적인 안전장치로 가장 중시돼 왔다. 연구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외화보유액이 10억 달러 증가하면서 신흥국들이 위기를 겪을 확률이 5% 이상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 잭슨홀 미팅에 앞서 발표됐던 7월 Fed 의사록에서 테이퍼링이 공식화됐다. 델타 변이 등 변수가 있긴 하지만 이번 미팅에서는 테이퍼링 추진 시기와 실행기간 그리고 금리인상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인 일정이 앞당겨지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추진 시기는 다음달에 있을 Fed 회의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추진 방법에 있어서는 순차적 테이퍼링이 재차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부인했지만 미국도 집값이 ‘미쳤다’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급등하고 이에 편승한 주택담보대출 급증으로 가계부채가 경고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순차적 테이퍼링이란 주택저당증권(MBS)부터 매입을 줄이고 그 다음으로 국채를 가져가는 방안을 말한다.
순차적 테이퍼링이 안고 있는 문제는 국채와 MBS 간 금리 스프레드가 흐트러져 시중 유동성이 과도하게 국채로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집값 하락에 따른 역자산 효과와 장단기 금리 간 역전 현상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급부상해 Fed가 가장 경계하는 ‘제2의 에클스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파월 의장의 주장대로 매월 국채 800억달러, MBS 400달러를 매입해 주는 것과 같은 비율로 축소할 때도 ‘2대 1’ 비율로 줄이는 방안도 심도 있게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이 방안은 매입할 때와 축소할 때 국채와 MBS 간 스프레드를 유지할 수 있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이례적으로 상승한 집값과 급증한 가계부채를 축소하려는 정책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선택은 한국은행과 Fed가 쥐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고 Fed가 테이퍼링을 추진한다면 ‘패닉’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국 증시에서는 ‘퍼펙트 스톰’에 대한 우려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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