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집이 갭투자"…무주택자 눈물겨운 내집마련

전효성 기자

입력 2021-09-24 17:15   수정 2021-09-24 17:21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수하는 이른바 `갭투자`는 다주택자의 투자 수단으로 주로 활용됐다. 하지만 최근들어 무주택자의 갭투자 비율이 기형적으로 늘고 있다. 고강도 대출 규제로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진데다 집값까지 계속 오르며 추격 매수의 수단으로 갭투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전세금을 활용해 생애 첫 집을 마련하는 `혼신의 갭투자` 사연을 들어본다.

● 4년전 2.7억 아파트가 6억…"더 늦으면 안되겠다"

30대 교사 A씨는 지난 2017년 구로구의 아파트 매수를 고민했다. 당시 전용 39㎡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2억 7천만원, 전셋값은 2억 3천만원이었다. 아파트 면적이 너무 작다고 느낀 A씨는 전세를 선택했다. 4년이 지난 현재 그 집은 6억 8천만원까지 올랐다.

결국 A씨는 최근 주택 매수를 결정했다. 199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인데 매매가격 7억원 중 5억원을 세입자 전세금으로 충당했다. 나머지 2억원은 신용대출과 기존 아파트 전세금으로 채웠다. 현재 A씨는 직장 근처의 오피스텔에서 월세로 거주 중이다.

`생애 첫 집`을 구축 아파트로, 실제 입주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A씨는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A씨는 "더 일찍 집을 샀다면 좋겠지만 집값이 오르는 걸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안심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내년에도 집값이 오를 거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어떤 방법이든 서울에 집을 샀다는 것 만으로도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 기형적인 갭투자 증가세…"서울 부동산 거래의 50% 차지"

A씨의 사례처럼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주택을 매수하는 사례는 전체 주택 거래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집값이 오르면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벌어져(=전세가율 하락) 갭투자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오르며 갭투자의 발판이 마련됐고, 집값 상승세가 계속될 거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갭투자를 활용한 추격 매수가 이뤄지고 있다.

천준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3월~2021년 7월 서울의 부동산 매매거래 19만 3,974건 중 보증금을 승계한 거래는 9만 581건(47%)이었다. 집을 샀지만 실제 거주할 수 없는 상황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다. 특히 20대는 보증금 승계 비율이 71%에 달했다.
● 막힌 대출에 청약도 요원…"영끌 넘어 남의 돈 끌어서라도"

무주택자의 갭투자가 늘어나는 건 고강도 대출 규제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인 상황에서 내 집 마련을 위해서는 최소한 집값의 절반 이상은 현금으로 채워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11억 7,734만원(KB국민은행)에 달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집을 사는 `영끌`로는 부족한 부분을 `남의 돈`인 전세금으로 채워야 하는 현실이다.

가점제 중심의 청약 제도도 무주택자가 갭투자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이유다. 공급이 끊기며 최근 1년간 서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161대 1, 경기권은 34대 1까지 치솟았다. 아파트에 비해 비인기 상품이었던 오피스텔 청약 경쟁률도 덩달아 12.2대 1까지 높아진 상황이다. 지난해 서울의 평균 청약 당첨 하한은 61점을 기록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3기 신도시 사전청약에서도 특별공급 경쟁률이 15.7대 1, 신혼희망타운도 4.5대 1에 달했다"며 "당해 지역에서 거주하지 않는 한 특별공급을 받기 어렵다. 30·40대가 청약 포기족이라고 불리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 극한의 레버리지 "집값 하락 때는…"

무주택자의 갭투자를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집값이 오를 때는 문제가 없지만 집값이 하락세로 전환한다면 금융상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집값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극한의 레버리지를 당겨 쓴 만큼, 언제든 `깡통주택`의 위험성도 함께 존재한다.

최근 1년, 20대가 서울에서 구매한 부동산 평균가격은 4억 7천만원, 30대는 7억 4천만원, 40대는 8억 9천만원이다. 연령대가 낮을 수록 가용자금도 적어 중저가 부동산을 구매한 것이다. 20대 매수자의 갭투자 비율은 71%, 30대는 49%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집값이 하락세로 전환하면 수도권 외곽 지역, 빌라, 중저가 아파트부터 하락하는 흐름을 보인다. 특히 경기·인천 지역은 3기 신도시 등 적지 않은 공급 물량이 계획돼 있는 상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향후 2~3년 내 하락장이 시작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집값이 하락한다면 수도권 외곽지역부터 하락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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