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모호한 중대재해법…폐지 목소리까지

임동진 기자

입력 2021-12-23 17:11   수정 2021-12-23 17:11

    <앵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모호한 규정과 과도한 처벌은 기업들을 답답하게 하고 있습니다.

    재계는 물론 전문가들도 이대로 법이 적용된다면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실효성은 떨어질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부동산부 임동진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곧 있으면 시행인데 아직도 기업들은 뭔가 제대로 준비가 안된 분위기에요.

    먼저 고용부가 밝힌 걸 보면, 사업주가 안전보건 의무를 다한 경우에는 처벌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건 사실인거죠?

    <기자>
    네. 법의 제정 목적을 보면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한다고 돼 있고요.

    고용노동부에서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 처벌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러면 어떤 부분이 문제라는 겁니까?

    <기자>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 내용입니다.

    여기서 ‘경영책임자 등’이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기업들이 혼란을 느끼는 대표적인 부분으로 과연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실 기업들이 최근 안전보건책임자 자리를 만들고 격상시키는 것은 중대재해를 더 철저히 예방하자는 측면도 있지만 책임을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도 깔려있습니다.

    계속되는 기업들의 호소에 고용노동부는 해설서를 내고 원칙적으로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경영자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해설서를 살펴보면 직무와 책임·권한, 기업 의사결정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경영책임자 등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나와있어서 여전히 경영책임자 등의 실질적인 권한 여부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기업들은 물론 법조계의 입장입니다.

    <앵커>
    그러니까 CEO가 안전보건책임자, CSO라고 하나요? CSO한테 전권을 줬어도, 사고가 났을 때 CEO가 책임을 진다는 얘긴지, 아니면 책임을 경감받을 수 있다는 얘긴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런거죠? 그리고요?

    <기자>
    특히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경영책임자 등’이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돼 있지 않습니까?

    ‘또는’ 이란 말은 ‘ 및’, ‘그리고’ 란 표현과 달리 선택적인 관계를 표현한건데 이것을 고용부 해설서처럼 경영자와 안전보건담당자 모두 책임자다 라고 할 수 있는지도 여전히 모호한 부분입니다.

    이와 관련해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률 명확성 원칙이라든가 죄형법정주의 원칙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얼마만큼 위반해서는 안 되는 범죄의 구성 요건이 구체적으로 규정이 돼 있느냐 하는 것이거든요. 즉, 어느 단위까지 어느 수준까지 의무를 준수하면 어떤 결과에 대해서 면책이 되느냐 하는 그 기준이 좀 더 명확해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법률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법률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제정된 시행령도 여전히 그런 명확성 원칙에 부합하는 그런 규정을 가졌다고 보기 어려운 거죠.]

    <앵커>
    경영자 처벌에 대한 불만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을 형사처벌하는 것, 또 형량 등에 대해서도 과도하다는 지적이죠?

    <기자>
    맞습니다. 최고경영자 입장에서는 중대재해 사건이 발생하면 사실상 더 이상 경영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길게는 수년 간 검찰 조사와 법원 출석을 해야하는 일이 생길 수 있고요.

    나중에 무죄가 되더라도 그 기간동안 경영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나중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야 되는 그런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나라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서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해놨는데요.

    이 법 자체도 현재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등 주요 국가들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인데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더해서 더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 사실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죄하고 지금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처벌을 하고 있는데 사실 중대재해처벌법은 과실범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보다는 좀 와화된 형태로 적용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고라는게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자 과실보다는 근로자 쪽의 과실로 사고가 나는 경우들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좀 책임소재를 명백하게 해주는 이런 것들도 필요하고...]

    <앵커>
    기업들 입장에서는 특히 법 적용 1호가 될까 우려하고 있다고요?

    <기자>
    특히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건 1호 타깃이 되는 것입니다.

    법 시행 후 첫 번째 적용 대상이 될 경우 과잉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큰데요.

    상징성 측면도 있고요.

    아직까지 기준이 불분명하고 판례도 없기 때문에 검찰은 폭넓게 법을 적용해 확정적으로 기소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하지만 법원 입장에서는 형사법 원칙상 명확한 사안에만 유죄를 내릴 것이기 때문에 여러 사례에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수년 간 혼선이 있을 전망입니다.

    <앵커>
    재계에서는 보완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법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고요?

    <기자>
    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논란 속에 재계의 보완 요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구체성, 명확성이 상당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 입장에서는 인지하지도 못했는데 법 위반이 발생해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요.

    일부 전문가들은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지 이중 규제가 될 수도 있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정진우 한국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 여러가지로 확충해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만듦으로써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이라든지 여러 가지 많은 어떤 의무 간의 충돌, 그 리스크를 좀 벗어나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즉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것이 정답이지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할 생각을 안 하고 어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은 현장에서 큰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

    <앵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있어서 대선이 또 중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면서요?

    <기자>
    네. 실제로 법이 제대로 적용되는 건 내년 대통령 선거 이후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는데요.

    각 후보들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근로감독 권한 강화, 원청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 책임 강화 등 산업재해에 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고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해당 법안에 대해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법이라며 사고 책임자 처벌보다는 예방에 법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더 강력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앵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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