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국제사회의 제제가 본격화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직접적인 제재 영향권에 들고 있다.
현재 한미 양국의 협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기업들은 미국의 대(對)러시아 수출통제 조치인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적용 예외 대상에 한국이 포함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현지에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부품 공급망과 해상 물류망에 차질이 생길지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하고 있다.
이에 앞서 현대차는 글로벌 물류 차질에 따른 부품 부족으로 인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오는 5일까지 중단한다고 밝힌바 있다. 현대차는 러시아의 `여성의 날` 연휴인 6~8일이 지난 9일부터 생산을 재개할 예정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현재 네온(Ne), 크립톤(Kr) 등 반도체용 희귀가스 재고를 확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국내 희귀가스 수입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립톤이 48%(우크라이나 31%·러시아 17%), 네온이 28%(우크라이나 23%·러시아 5%) 수준이었다.
배터리 업계는 주요 광물을 중국, 호주, 남미 등에서 수급해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영향권에 들 수 있다고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기차 및 배터리 공급망은 광물 등 원자재→소재 업체→배터리 업체→완성차 업체로 구성되는데 단계별로 수년 단위의 장기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시기에 이번 전쟁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가 나온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대표적인 배터리 원자재 광물인 니켈의 톤(t)당 가격은 이날 기준 2만5천450달러다. 전년 평균보다 약 38%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철강업계의 경우도 무연탄 등 공급난 가능성에 대비해 대체원료 확보, 수입선 다변화 등을 검토 중이다.
국내 기업들은 특히 FDPR 면제 대상에 한국이 포함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은 대러시아 제재에서 미국 밖의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FDPR를 적용했다.
유럽연합(EU) 27개국과 호주,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영국 등 32개국은 미국에 준하는 독자 제재를 하기로 해 이 규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한국 기업은 예외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FDPR 적용 대상인 제품을 러시아로 수출하려면 미국 상무부를 거쳐야 한다.
특히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 일부 완성품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지가 관건이다.
완성품과 민수품은 수출 통제 대상이 아니지만, 스마트폰에는 통신용 칩이 들어가 군사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제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약 30%로 1위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2013년 이란인들이 외부세계와 더 자유롭게 소통할 길을 열기 위해 이란에 대한 통신기기 판매 제재를 완화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이란 사례를 들어 이번에도 스마트폰이 수출 제재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 한국에서 모듈을 수출하면 러시아 현지 공장에서 조립해 생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모듈 수출이 가능한지도 관심이다.
이런 가운데 애플,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러시아 내 제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사업 철수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아직 별도의 조치를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내부적으로 대응 기조를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의 대척점에 서 있는 미국 기업들과 달리 러시아 시장에 공을 들여온 국내 기업들은 이번 사태 이후 현지 사업이 받을 타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 대응에 극도로 예민한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 및 TV 시장에서 점유율 1위 사업자이며, 세탁기·냉장고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는 LG전자와 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khkkim@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