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 파동)때처럼 인플레이션 상승과 급격한 경기 둔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블룸버그 원자재 현물지수는 지난 한 주 13.02% 뛰어올랐다. 이는 관련 집계가 시작된 1960년 이후 역대 최고 주간 상승률이다. 오일쇼크가 한창이던 1974년 9월 마지막 주의 상승률 9.67%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이 지수는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밀·대두 등 곡물, 금·구리 등 금속을 포함한 33개 주요 원자재 현물 가격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주요 원자재 시장 가격 지표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골드만삭스 원자재지수(GSCI)도 같은 기간 20.03% 치솟아 집계가 개시된 1970년 이후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을 나타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전 배럴당 90달러 중반 수준이었던 국제유가는 순식간에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120달러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 이후 지난 한 주 동안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26.30%, 브렌트유는 20.61%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유럽 천연가스 가격지표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가격은 103.92% 폭등하면서 한때 장중 역대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 우크라이나·러시아가 세계 수출량의 약 29%를 차지하는 밀이 59.91% 치솟았고 옥수수(+14.71%), 대두(+5.41%) 등도 급등했다.
금속도 니켈(+18.71%), 철광석(+15.45%), 알루미늄(+14.64%)을 필두로 일제히 오르는 등 지정학적 위기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원자재 시장 전반의 급등세로 번졌다.
그 결과 가뜩이나 수십 년 만에 최고로 오른 각국의 소비자물가가 더욱 치솟고 세계 경제 성장이 짓눌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각국에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올 것이라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한때 `채권왕`으로 불렸던 빌 그로스 핌코 공동창업자는 지난 3일 CNBC와 인터뷰에서 세계 중앙은행들이 저금리 환경에 갇히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자신은 적극적으로 주식을 매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 문제를 예측했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은 지난달 17일 러시아의 침공을 가정해 "강력한 스태그플레이션 바람이 세계 경제에 불어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최근 기고문에서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까지 올라가면 유럽연합(EU)의 경제 성장률은 2%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자산운용사 누빈의 앤더스 페르손 채권 투자책임자는 전망했다. 그는 유가 상승으로 미국의 성장률도 1%포인트 내려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정보업체 IHS마킷의 대니얼 예긴 부회장은 국제유가를 몇 배로 끌어올린 1970년대 오일쇼크에 맞먹는 에너지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1970년대의 아랍 석유 수출 중단과 이란혁명 이후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973년 중동 산유국은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도운 미국과 서방국가에 대한 보복으로 원유 공급을 끊었고 국제유가는 폭등했다. 이후 1978∼1979년 이란 혁명 여파로 유가는 또다시 수직으로 상승했다.
서방의 제재 여파로 러시아 원유 수출은 이미 급감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 대한 직접 제재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정유회사와 은행들은 이미 시작됐거나 향후 추가될 서방의 제재를 위반하게 될까 봐 러시아 원유를 꺼리고 있다.
JP모건은 러시아산 원유의 66%가 구매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러시아산 원유의 수출 차질이 연말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경우 유가가 올 연말 배럴당 185달러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khkkim@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