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원유 일부에 대해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중국과 적극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현지시간) 이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러한 방안이 실현될 경우 국제 원유시장을 지배하는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흠집이 생길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6년간 가다서다를 반복해온 위안화 표시 원유 계약에 관한 양국의 논의는 올해 들어 미국의 안보 보장 약속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실망이 커지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밝혔다.
사우디에서 미국이 예멘 내전에 관해 자국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 복원 시도에 나서면서 갈등 수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사우디는 지난해 미국의 갑작스러운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사우디는 대중 수출분의 위안화 결제 허용은 물론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통해 일명 `페트로위안`으로 불리는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거래 허용도 고려하는 등 중국과 한층 가까워지려는 모습이다.
중국도 사우디의 자체 탄도미사일 개발과 핵 프로그램 추진을 돕고, 네옴 신도시 개발을 비롯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관심을 기울이는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 작전을 펼쳤다.
과거 사우디산 원유의 최대 고객이었던 미국이 이제 수출 시장에서 사우디와 경쟁하는 반면, 대신 중국이 최대 수요처로 부상한 것도 이런 논의의 배경이 됐다.
하루 620만 배럴의 원유를 오직 달러만 받고 수출하는 사우디가 자국산 원유의 4분의 1 이상을 수입하는 중국에 위안화 결제를 허용할 경우 국제 원유시장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이 사우디를 군사 지원하는 대가로 오직 달러화로만 원유를 결제하도록 한 이른바 페트로달러 체제에 균열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달러화의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를 뒷받침하는 이 체제가 퇴색되면 `달러 패권`이 덩달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산유국들이 사우디의 뒤를 따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워싱턴 소재 국제안보분석연구소의 이코노미스트 갤 루프트는 WSJ에 "원유시장, 더 나아가 전체 글로벌 원자재 시장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한 보험정책"이라면서 "그 벽돌을 빼면 벽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우디가 실제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할지를 놓고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미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사우디의 위안화 허용 가능성에 대해 "가능성이 아주 높지는 않다"며 사우디가 과거에도 미국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꺼냈던 단골 소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자국 리얄화를 달러에 연동시킨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사우디가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면 경제 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고, 덜 안정적인 통화로 원유를 팔면 사우디 정부의 재정 전망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고유가 상황에서 사우디가 수입원을 다변화하는 시도로 충분히 채택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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