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종목이 지주회사입니다.
SK이노베이션, SK E&S 등 알짜 사업을 거느린 재계 2위 SK㈜는 장부가치와 비교해 무려 60%나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미국과 국내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SK㈜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습니다.
김종학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미국 행동주의 사모펀드 달튼 인베스트먼트(Dalton Investment)가 지난 4월 SK㈜에 보낸 주주서한입니다.
한국계 파트너가 작성한 주주서한에서 달튼 인베스트먼트는 "SK㈜가 강력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에 비해 심각할 정도로 저평가 상태"라고 분석했습니다.
현재 주당 25만 원 수준인 SK㈜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배당을 중단하고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라고 공개적인 요구를 했습니다.
국내 가치투자 진영을 이끌고 있는 라이프자산운용은 여기서 더 나아가 24.4%의 자사주 가운데 10%인 180만주를 먼저 소각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강대권 / 라이프자산운용 공동 대표이사]
"SK가 지금 갖고 있는 기업가치를 그냥 회계상 장부가로만 해도 40조가 훨씬 넘습니다. 근데 지금 시총이 20조밖에 안 되고, 그나마 자사주 24%가 있기 때문에 이걸 제거하고 나면 15조원 수준이거든요. 그러면 회계상 장부 가치로만 보더라도 굉장히 많이 저평가가 되어있는 거예요."
두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는 SK㈜가 지난 3월 주주총회(이성형 재무부문장)에서 밝힌 자사주 매입·소각 검토계획보다 더 구체적입니다.
오히려 투자회사인 SK㈜에 `리스크관리위원회`를 만들어 대주주의 투자성과를 높이고, 주주가치를 보호하란 요구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상훈 / 경북대학교 법학대학 교수] (전화 녹취/멘트 수정예정)
"거래소의 시가총액이 떨어지고 주가가 디스카운트 된다는 것은 일반주주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장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은 아예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할 의무를 부과하는 상법을 도입하는게.."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SK㈜가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 애플 등과 같이 매년 자사주 소각만으로 2025년 목표로 제시한 시총 140조원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한진칼과 에스엠, 동원산업 등 소액주주들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행동주의 펀드가 재계 2위 SK의 주주환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 "기업과 먼저 협의하고 주식 매입"....기업-주주 윈윈 이끌까
<앵커>
달튼 인베스트먼트와 라이프 자산운용, 일반 투자자들에게 익숙한 기관은 아닙니다.
어떤 곳이기에 SK㈜를 상대로 이런 주주 제안을 내놓은 겁니까?
<기자>
두 곳 모두 미국과 국내에서 행동주의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기관입니다.
달튼 인베스트먼트는 미국계 행동주의 사모펀드로 국내에서도 2019년부터 KCGI, 옛 밸류파트너스 등와 연대해 국내 금융, 유통기업을 상대로 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목소리를 냈던 기관입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이채원 의장과 여기에 연대한 가치투자자들이 모여 움직이는 행동주의 펀드입니다.
라이프 한국기업ESG향상 펀드라는 이름으로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사업구조 개선을 제안하고 주가를 부양하는 방식인데, 수익률이 꽤 높은 편입니다.
올해 금융시장이 긴축 불확실성으로 인해 크게 하락하는 가운데 연초 대비로 1%대, 작년 처음 설정해서 이번 달까지 5.2%대 수익률을 낼 만큼 이 분야에서 목소리를 키우는 운용사이기도 합니다.
<앵커>
이들 행동주의 펀드가 SK에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게 자사주 소각과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설치입니다.
구체적으로 실제 주가에 어떤 영향을 준다는 겁니까?
<기자>
자사주를 소각해 회사가 갖고 있던 주식을 줄이게 되면, 결과적으로 기업의 주당 가치, 주가가 상승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대주주와 소액주주 모두에게 유리한 의사결정이 됩니다.
하지만 국내 2천곳이 넘는 상장기업들 가운데 자사주 소각을 공시한 건수를 분석해보면 최근 3년간 150건이 채 되지 않습니다.
발행주식대비 소각 비율로 계산해보면 한미반도체가 14%로 가장 많이 소각한 편이고, SK텔레콤 약 10%(2조원 규모), 다올투자증권, 메리츠금융 정도가 자사주 소각 상위에 듭니다.
전체 주식 중 소각한 비율이 크지 않지만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만으로 이들 기업 주가는 대체로 좋은 흐름을 보여줬습니다.
행동주의투자자들이 주목한 것도 이런 대목입니다.
증권사 분석을 참고하면 차입금 등을 뺀 SK의 순자산가치는 45조 8천억원, 이걸 주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61만3천원입니다. 할인율을 적용해 40만원은 받아야 할 주가가 지금은은 24~25만원 선에 묶여있습니다.
이를 해소하려면 현재 SK가 보유한 자사주가 열쇠가 되는데, 10%만 줄여도 본래 가치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앵커>
SK가 투자회사로 꽤 오랫동안 변화를 시도해왔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론 주가가 더 하락한 셈이라고요?
<기자>
라이프자산운용 측 자료를 보면 SK가 투자회사로 변화하기 시작한 뒤 4년여간 주당순자산가치(BPS)는 11.5% 상승했는데 주가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주가가 하락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심지어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배(1.06배)수준이던 것이 0.63배로 오히려 하락했다고 지적합니다. 좋은 사업 구조를 갖고도 제값을 못했다는 얘기인데, 강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강대권 / 라이프자산운용 공동 대표이사]
"SK가 투자하고 있는 영역을 보면 일단 2차전지 소재나 반도체 쪽에 굉장히 많이 투자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수소, 최근에는 각광받고 있는 SMR 소형원전쪽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펀드매니저지만 제가 SK같은 그런 신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느냐, 저도 자신이 없어요. 저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가 시장 신뢰의 문제기 때문에 저희는 기본적인 액션을 왜 안 하시는지 모르겠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앵커>
SK㈜는 어떤 입장입니까?
<기자>
SK㈜는 2020년부터 파이낸셜스토리를 통한 주주환원 계획을 해마다 구체화하고 있고,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요구한 사항도 검토 단계에 있습니다.
앞서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이성형 재무부문장이 직접 언급했죠.
자사주 소각 관련 시기를 법률 이슈로 구체화할 수는 없지만 검토하는 옵션이고, 기존 2.4% 자사주도 소각 대상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사주 소각에 따른 세금 등 법적 문제와 지배구조 개편 등 시나리오를 따지는 건데 규모의 시점을 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이 미리 압박에 나서는 모양새인 겁니다.
주목할 대목은 이러한 행동주의 펀드가 과거의 삼성, 현대차를 겨냥한 엘리엇에서 연상되던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투자기관들과 전혀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강대권 / 라이프자산운용 공동 대표이사]
"행동주의에서 배당 많이 주세요, 주가 올려주세요 이런 걸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분배의 문제로 아직은 많이 보시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저희는 이걸 분배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자본 시장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는 정말로 성장을 위해서 행동주의를 하고 있고, 그리고 이게 안 되면 성장도 안 되고 그러면 생존도 안 된다, 다 죽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소액주주를 외면하던 대주주들의 입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는게 투자자들의 설명입니다.
기업들이 발견하지 못한 지배구조, 환경 부문에서 개선할 점을 미리 건드려주고 개선할 부분을 제안해서 투자 수익을 함께 나누려는 시도가 더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이밖에도 한화, LS 등을 상대로 주주들의 자사주 소각·매입 등 기업가치를 높여달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SK의 주주환원을 시작으로 만연해있던 국내 기업들의 본래 가치를 찾아주면서 한국 시장의 저평가를 뜻하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계기도 조금씩 마련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