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대폭 축소하고 나서면서 유럽 전역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가스 기업 가스프롬은 최근 이틀간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체코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량을 대폭 감축했다.
러시아가 4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폴란드와 네덜란드,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WSJ는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천연가스 공급량이 이번 주 초와 비교해 55%가량 줄었다고 전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유럽에 맞서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삼아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에 대해 이틀 사이에 천연가스 공급량을 기존 대비 60%나 줄였다.
이에 대해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장관은 16일 "러시아가 천연가스 가격을 불안정하게 하고 가격을 올리려는 술수를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록 높은 가격일지라도 우리는 필요로 하는 물량을 살 수 있다"면서도 "지금은 에너지를 절약할 때다. 지금 상황에선 1㎾h라도 아끼는 게 도움이 된다"라고 호소했다.
이탈리아의 최대 에너지 회사 에니(Eni)는 "가스프롬이 계약량의 65%만 공급하겠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는 EU 국가 중 독일 다음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국이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이에 대해 "가스프롬은 기술적인 이유를 들었지만 우리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가 가스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블라디미르 치조프 EU 주재 러시아 대사는 부품이 없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이 완전히 닫힐 수 있다고 위협하면서 "이렇게 되면 독일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회사 가스프롬은 감축 원인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탓으로 돌렸다.
노르트스트림에서 사용하는 터빈이 고장나 캐나다로 보내 수리를 맡겼는데, 제재로 인해 터빈 반입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이 여파로 유럽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이번 주 들어서 42%가량 뛰어올랐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뜩이나 치솟는 물가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유럽 각국이 인플레이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은 천연가스 공급의 약 40%를 러시아에 의존해 가스 공급 중단은 러시아의 강력한 대유럽 견제 카드로 꼽혀왔다.
WSJ는 유럽이 이런 상황을 우려해 대체 공급원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샅샅이 뒤졌지만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인프라가 미비해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단기적인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가스 밸브를 닫으면 유럽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우드 매켄지의 마시모 디 오도아르도 부사장은 "노르트스트림이 닫히거나, 40%를 감축한 상황이 지속하면 유럽의 상황은 매우 끔찍해질 것"이라며 러시아가 천연가스 밸브를 잠그면 유럽의 재고는 내년 1월에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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