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전문가들의 이견 속에서도 원숭이 두창 감염 사태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한 배경이 주목된다.
25일(현지시간) WHO가 지난 23일 원숭이 두창에 대해 최고 수준의 공중보건 경계 선언인 PHEIC를 내린 뒤 홈페이지에 게시한 설명 자료에 따르면 WHO의 이번 결정을 앞두고 전문가들의 견해는 갈렸다.
국제 보건 긴급위원회에서는 원숭이 두창 발병 경위가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병 국가가 70여개국에 이르는 등 급격히 확산하는 점에 비춰 PHEIC 선언 조건을 갖췄다는 찬성론이 제시됐다. 반면 감염 급증세는 일부 국가에 국한돼 있고, PHEIC가 선언될 경우 당장 백신이 불필요한 일반 대중의 접종 수요만 키워 백신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심지어 15명의 위원들 가운데 반대론을 편 전문가가 9명에 이를 정도로 PHEIC 선언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많았지만,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일종의 직권 결정으로 원숭이 두창 감염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는 찬성론자들의 의견과 같은 맥락에서 선제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잘 모르는 질병이 새로운 전파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는 만큼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갖춰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런 판단에는 원숭이 두창이 감염자를 추적하기 어렵다는 실무적 진단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원숭이 두창의 발병 사례를 두고 유럽 질병예방통제센터(ECDC)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보건비상대비대응국(HERA)에서 모델링 작업을 벌인 결과 코로나19 유행 초기처럼 확진자의 접촉 대상을 쫓아가는 추적 방식이 덜 효과적이거나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보고가 WHO에 올라왔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원숭이 두창 발병 사례의 대다수는 동성과 성관계한 남성이 병을 얻는 경우다. 이런 점 때문에 자칫 사회적 낙인찍기를 당할까 두려운 환자들로부터 접촉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HERA 측은 환자가 연락하거나 접촉한 대상자가 여럿인 데다 익명인 경우가 많아 추적이 쉽지 않으며 장시간 환자를 격리해 두는 것도 어렵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사전에 백신을 맞고 예방 활동에 나서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WHO는 결론 내렸다.
가장 강도 높은 경계 선언을 내리면 각국의 보건당국이 이 사안을 면밀하게 관리할 뿐 아니라 감염 위험이 높은 이들 스스로 백신 접종을 하는 등 예방 활동에 나설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선 감염 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이나 차별을 피한 채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각국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 조치를 비롯한 인권적 배려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WHO는 권고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이휘경 기자
ddehg@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