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 '주 → 월·이상'…주 69시간· 64시간 중 선택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로 긴 휴가…선택근로 잘 쓰면 주4일제
경영계 "제도 개편 환영"…노동계 "몰아치기"
[ 이정식 / 고용노동부 장관 : 경제 규모 10위권인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게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시간 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입니다. 당초 의도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권리 의식, 사용자의 준법 의식, 정부의 감독 행정 이 세 가지가 함께 맞물려 가야 합니다. MZ세대들은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 성과급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됐냐' 라고 해서 권리 의식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과거 나이 많은 기성 세대들과 달리, 저는 그래서 적극적인 권리 의식이 이 법을 실효성 있게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앵커>
정부가 '주 52시간제'로 대표되는 근로시간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을 추진합니다. 70년간 유지하던 주 단위 근로시간 칸막이를 없애는 게 핵심입니다. 1주일에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 바쁜 주에는 최대 69시간까지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장기휴가 등을 통해 푹 쉴 수 있게 한다는 겁니다.
오늘 심층분석, 경제부 이민재 기자와 함께 합니다. 이 기자, 사실상 근로시간 제도의 큰 틀이 바뀌는 건데, 이번 개편이 왜 필요한 겁니까?
<기자>
네, 이번 근로시간 제도 개편의 핵심은 '선택권' 입니다. 현재는 1주 단위로 기본 40시간에 연장 근로 12시간을 더해 최대 52시간 내에서 노동 시간을 관리해야 합니다.
시대 변화를 고려할 때 낡은 구조는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인데요. 대표적인 예로 한 근로자가 코로나19 확진으로 긴급 대체 근무를 했는데, 주 52시간을 넘어 적발된 사례를 꼽았습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장 노동 시간 관리 단위를 주 12시간에서 월(52시간), 분기(140시간), 반기(250시간), 연(440시간)로 다양화하는 안을 내놨습니다. 적절한 관리 단위를 근로자 대표와 근로 당사자 간 합의로 정하고, 평소보다 바쁠 때 특정 주에 몰아서 일을 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앵커>
핵심은 주당 52시간 넘게 일할 수 있게 된다는 건데, 그렇다면 최대 얼마나 일할 수 있게 되는 겁니까?
<기자>
제도 개편에 따라 연장 관리 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정하게 되면 특정 시기에 주 52시간을 넘길 수 있습니다. 다만, 연장 근로 총량을 한 번에 다 쓸 수는 없습니다. '건강권'을 위한 휴식 시간 등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크게 나누면 '주 69시간'과 '쉼 없는 주 64시간', 이 두 가지가 선택지입니다.
먼저 주 69시간부터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A근로자가 '11시간 연속 휴식 제도'를 적용 받을 경우, 하루 24시간에서 11시간 휴식 시간을 뺀 13시간 근무가 가능합니다. 여기에 4시간 근무마다 주어지는 30분 휴게 시간을 고려하면 하루 근무 시간은 최대 11시간 30분입니다. 주6일 일한다면 69시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쉼 없는 주 64시간'을 선택하면 어떻게 다른 겁니까?
<기자>
'11시간 연속 휴식 제도'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주 69시간 대비 제한이 덜합니다. 근로 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주 64시간 이내에서 근로가 가능하다는 점은 염두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A근로자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이틀까지 근무가 가능합니다. 이틀 근무 시간은 48시간, 64시간 제한을 고려하면 남은 16시간 뿐인데요. 이는 나머지 기간에 나눠서 써야 합니다.
<앵커>
'69시간과 쉼 없는 64시간', 최대로 가능한 근무시간만 따지다보니 얼핏 들으면 근무시간이 크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더 일해야 하는 겁니까?
<기자>
69시간, 쉼 없는 64시간 선택지는 어디까지나 일이 몰리는 특정 시기에 한정된 겁니다. 근로가 장기간 이어질 것을 대비한 제도를 보면, 이런 부분을 고려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연장근로 총량은 관리 단위를 분기, 반기, 연으로 늘릴수록 단축됩니다. 연장 근로 시간이 기존 주당 12시간에서 분기에는 주 평균 10.8시간, 반기에는 9.6시간 등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주 52시간을 넘길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선택에 따라 연장 근로를 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연장 근로 시간 관리 단위를 분기 이상으로 확대할 경우에는 산업재해 과로 인정 기준인 '4주 평균 64시간'을 적용하는 점도 참고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휴가를 저축처럼 적립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확대해, 안식 월 등 장기 휴가를 더 많이 쓸 수 있도록 하고, 선택근로제 모든 업종 정산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려 선택에 따라 주4일, 주4.5일을 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앵커>
이번 제도 개편을 두고 의견이 엇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이번에도 정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죠?
<기자>
경영계는 제도 개편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보도자료를 통해 업무량 증가에 대한 유연한 대응, 워라벨 요구 확대에 따른 다양한 시간 선택권이 제한돼 온 어려움이 해소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중소기업들도 대체적으로 비슷한 입장인데요. 이들은 일본의 사례처럼 일이 몰리면 한달에 100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추가 건의를 하기도 했는데요. 이와 관련해 IT바이오부 정호진 기자 리포트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정호진 기자 리포트 : 중소기업계 "월 100시간 일하게 해달라" ]
<앵커>
사실 이번 개편안은 정부의 추진안에 불과합니다. 결국은 법이 통과돼야 하는 건데, 야당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전망되고 있습니까?
<기자>
노동계는 몰아치기 근로로 인한 과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주당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는데, 주 69시간과 쉼 없는 64시간은 과하다는 겁니다.
경영계가 업무 집중이 필요한 경우에만 활용되기 때문에 건강권을 해친다는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이들 간 이견을 좁히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갈등은 고스란히 입법 과정에 반영될 것으로 예측되는데요.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도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세액 공제율을 높이는 이른바 'K-칩스법'이 특혜 논란으로 야당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을 볼 때, 근로시간 개편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도 어려움을 겪을 전망입니다.
정부는 개편안 중 입법 사항은 40일간 입법 예고를 거쳐 오는 6~7월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심층분석, 경제부 이민재 기자였습니다.
영상 취재 : 김재원, 영상 편집 : 권슬기, CG 심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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