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붕괴 이후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은행들이 연방준비제도(연준·Fed)로부터 지난주에만 215조원 이상을 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은행들은 지난 9∼15일 1주간 연준 재할인창구를 통해 1천528억5천만 달러(약 200조원)를 차입했다.
이는 직전 주(약 458억8천만 달러, 약 60조원)보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1천110억 달러(약 145조원)의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은행들은 지난 12일 시작된 연준의 긴급 자금 지원을 통해서도 119억 달러(약 15조5천억원)를 빌려 최근 1주간 은행권이 연준에서 차입한 금액은 총 1천648억 달러(약 216조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SVB와 시그니처은행의 잇따른 파산에 은행들이 앞다퉈 뱅크런(대규모 자금 인출)에 대비하는 것은 여러 긴급 조치에도 미국 은행 시스템이 여전히 취약함을 보여준다고 외신은 진단했다.
앞서 재무부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SVB 초고속 붕괴 사태에 대응해 SVB와 시그니처은행 등에 예금보험 한도를 넘는 예금도 전액 보호하기로 했다. 또 은행들이 손해를 보지 않고 유동성을 마련할 수 있도록 연준에 새로운 대출 프로그램인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을 마련했다.
부도 위기에 빠진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에는 미국 대형은행 11곳이 총 300억 달러(약 39조원)을 예치해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연준의 재할인창구는 은행들이 지급준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연준에서 자금을 공급받는 제도다. 은행들은 일반적으로 재할인창구 이용을 피하려 하는데, 특히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돼있기 때문에 이용한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 재할인창구를 통한 차입은 비밀로 유지되며 2년간 이를 이용한 은행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이를 통한 차입이 거의 없었다가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기간 몇몇 대형 은행이 공개적으로 대출을 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은행과 금융업계에 대한 불안감은 일반 기업들에서도 퍼지고 있다.
블룸버그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스타트업부터 상장기업까지 여러 미국 기업 경영진이 잠재적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다른 대출기관이나 MMF(머니마켓펀드)로 옮기거나 미 국채를 매입하고 있다.
이들은 FDIC 보호 한도 이상 금액을 은행에 예금해 두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예금을 다른 은행 등으로 분산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대마불사'로 꼽히는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체이스, 씨티그룹 등의 대형 은행들은 최근 수십억 달러의 예금을 빨아들였다.
금융시장 정보업체 크레인데이터에 따르면 국채와 기업어음(CP) 등 단기 채무증권에 투자하는 MMF에는 지난 10∼16일 1천82억 달러(약 141조2천억원)가 유입, 전체 설정잔액이 역대 최대인 5조3천800억 달러(약 7천21조원)로 불어났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1주간 MMF에 자금 유입이 가속하고 있으며 이는 자금이 은행 예금에서 이동한 것을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1개월 만기 미국 초단기 국채에도 은행 예금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몰리면서 금리가 4%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은행 예금 외의 다른 대안도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터 크레인 크레인데이터 회장은 만약 미국 의회가 부채 한도를 몇개월 안에 상환하지 못하면 초단기 국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khkkim@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