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당국 기밀문건 유출로 정치 ·군사적 약점이 노출된 미국의 동맹국들이 일단 표정관리에 나서고 있다. 도감청 피해 자체를 부인하거나 그 여파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하며 미국과의 지속적인 협력 강화 의지를 내비치는 반응이 대다수다.
미국의 동맹들은 미국과의 정보 공유가 국제 관계의 필수적 부분이 돼온 만큼 최근의 기밀문건 유출 사태에 대해 짐짓 의연한 척을 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현지시간)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미국의 동맹국들이 이같은 기밀 유출이 벌어진 상황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미국과의 정보공유를 중단하거나 제한할 '여유'는 없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일개 사병에게 다량의 고급 정보 접근권을 부여하는 미국의 첩보 관리 수준에 경악하면서도, 어느 나라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인 미국의 방대한 첩보능력을 놓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럽 관리는 이번 사태로 "정보가 보전·관리되는 방식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키면서 일부 피해가 야기됐다"면서도 미국과의 정보 연계가 포기하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잊을 만하면 또 벌어지는 유출 사건들이 미국과 같은 첩보 강국과 거래하는 데 수반되는 일종의 비용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일단 유출 문건에서 치명적일 수 있는 군사적 약점이 대거 노출된 우크라이나부터 '의연한' 모습이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전날 WSJ 인터뷰에서 유출 문건에 대해 대부분이 이미 공개된 정보이고, 새로운 정보보다는 상황에 대한 분석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문건 유출과 상관 없이 러시아군에 대한 봄 대반격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정보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동맹국,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구성국들도 유출된 문건에 포함된 정보의 가치를 크게 평가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호주 의회 정보위원회의 앤드루 월리스 부위원장은 파이브아이즈 정보동맹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미국과 호주의 관계는 흔들리지 않는다. 파이브아이즈 5개국은 애초에 1개국 혼자서는 그런 방어력을 구축하거나 정보를 모을 수 없다. 파이브아이즈 각국의 어떤 기술이나 능력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보 수집 분야에서 상당한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영국의 국방부도 트위터에서 "최근 미국 정보당국의 유출된 문건이 널리 보도되고 있지만, 이는 심각할 정도로 부정확하다"면서 이 문건 자체가 미국 정보당국의 의도적 정보 교란일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뉴질랜드 국방부 장관 출신의 개리 브라운리 의원도 유출 자체에는 놀라지 않았다면서 "이번 유출이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일의 진정한 교훈"이라고 말했다.
WSJ는 정부 고위 당국자의 대화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탄 수출 일정 등이 노출된 한국의 반응도 상세히 짚었다. WSJ는 한국 대통령실이 유출된 문건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며 정보의 가치를 평가절하했다고 전했다.
WP도 이번 사태가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에 '정치적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진보 성향 국회의원들이 미국의 도·감청 의혹에 대한 보수 성향의 정부의 '관대한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당국이 "미국의 악의에 대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미국의 행동을 옹호했다고도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WSJ는 동맹국 가운데 최소 1개 국가는 기밀 취급 절차를 재검토하는 작업에 돌입했으며 다른 동맹국들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통의 발언을 전했다. 구체적인 국가명은 전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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