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여성의 낙태 권리가 폐기된 지 1년을 맞은 24일(현지시간) 미 전역에서는 찬반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 내년 대선에 출마한 정치인들도 잇따라 입장을 내놓으며 낙태권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분열상을 또다시 노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1년 전 오늘 연방대법원은 미 전역 여성들의 선택권을 부정함으로써 미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박탈했다"고 말했다.
그는 "반세기 동안 미국의 법이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면서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됐다"며 "각 주(州)는 여성 건강과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낙태) 처치를 위해 수백마일을 이동하게 하고, 숙련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들을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극단적이고 위험한 낙태 금지를 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이런 낙태 금지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공화당은 전국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길 원하며, 또 이를 넘어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낙태약을 시중에서 못 팔게 해 피임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화당의 의제는 극단적이고 위험하며 대다수 미국민의 뜻과 다르다"면서 "정부는 계속해서 생식 건강에 대한 접근권을 보호할 것이며, 의회가 '로 대 웨이드'의 보호를 연방법으로 완전히 복원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여성의 낙태권이 수정헌법 14조의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임신 6개월 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했고, 이는 50년 가까이 유지돼 왔다.
하지만 보수성향 판사가 다수를 이룬 연방대법원이 작년 6월 24일에 이 판결을 폐기하면서 낙태 허용 여부를 각 주가 판단하도록 했다.
이에 공화당이 장악한 주들은 낙태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후속 입법 작업이 뒤따랐다. 절반인 25개 주가 낙태 제한 입법을 했다.
낙태 찬반 논란이 전국을 뒤덮으면서 미국 사회가 분열 양상을 보였고, 작년 중간선거에서 낙태 찬성 입장인 공화당이 사실상 패배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이날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낙태권 찬성 집회에 참석해 "우리는 모든 미국인이 이 권리를 확보할 때까지 이 싸움에서 진정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의회가 대법원이 박탈한 것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군중들은 "4년 더"를 외치며 내년 대선 승리를 기원하기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공화당 주도로 낙태의 기한을 임신 20주에서 12주로 단축한 법이 내달 1일 발효된다.
반면 내년 대선 공화당 경선에 나선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워싱턴DC에서 열린 낙태 반대 단체 집회에 참석해 "미국의 모든 주에서 생명의 신성함이 미국의 중심이 되도록 회복할 때까지 (우린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펜스 전 대통령은 전날 한 종교 행사에서도 "모든 공화당 경선 후보는 전국 기준으로 최소한 15주 이전 낙태 금지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화당 경선에서 1, 2위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 역시 낙태 제한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내년 대선 공약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디샌티스 주지사는 최근 플로리다에서 임신 6주 이후 낙태 금지라는 초강경 낙태 금지법에 서명한 바 있다.
이날 낙태권 폐기 1년을 맞아 전국에서 찬반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워싱턴DC에서는 '여성들의 행진' 등 낙태권 옹호 시민단체들이 집회를 열어 작년 중간선거에서 낙태권 반대 후보들의 낙선을 거론하며 내년 대선과 의회 선거에서도 유권자가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낙태 문제는 1년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내년 대선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뇌관이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편 최근 로이터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낙태를 엄격히 제한하는 법을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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