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이모(29)씨는 휴식 시간에 즐겨보는 유튜브 영상의 기본 재생 속도를 1.75배속으로 설정해뒀다. 그마저도 '10초 건너뛰기'로 영상을 넘기며 '핵심'만 골라 시청하는 게 습관이 됐다.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29)씨는 주말에 식당에 가는 대신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해 먹는 일이 부쩍 늘었다. 김씨는 "식당에 가서 음식이 나올 때까지 몇 분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진 듯하다. 배달은 기다리는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있지 않으냐"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10분 안팎으로 요약한 유튜브 영상을 즐겨본다는 직장인 박모(31)씨는 "봐야 할 것은 많은데 다 볼 수는 없으니 시간 절약을 위해 하루에 요약 영상만 3∼4편씩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분·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며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흐름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과 '가심비'(가격 대비 만족도)를 넘어 시간 대비 성능을 좇는 '시(時)성비'라는 말까지 나온다.
기성세대가 보기엔 과도하게 밀집된 생활 패턴일 수 있지만 입시와 취업 경쟁 속에 시간 대비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몸에 밴 이들로서는 이 같은 문화도 자연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씨는 "학교 다닐 때나 시험공부 할 때 인터넷 강의도 배속으로 봤는데 유튜브 배속 시청은 '국룰'(국민적 규칙) 아니냐"고 웃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공부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 재생속도를 높여 수강하는 등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려는 습관이 여가 시간마저 '낭비 없이' 보내는 데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만 효용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시간을 최대한 배제하는 습관 탓에 집중력과 인내심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자성과 비판도 나온다.
대학원생 이모(30)씨는 "솔직히 시간이 아깝단 건 핑계고 좀 덜 흥미로운 콘텐츠는 참지 못하고 넘기는 걸 보면서 스스로 인내심을 잃었다고 느꼈다"며 "그러다 보니 오히려 15∼20초 안팎 '숏폼' 콘텐츠만 여러개 보다가 1시간이 후딱 지나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앞뒤 맥락이 있기 때문에 '명장면', '명대사'가 되는 것인데 맥락 없이 가장 자극적이고 강렬한 핵심만 취하는 행동"이라며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극을 더 자주 강하게 얻기 위해 '숏폼'을 보고 2배속으로 돌려보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내성이 생기고 덜 자극적인 느린 화면에선 반응할 수 없게 되는 일종의 미디어·콘텐츠 중독"이라고 덧붙였다.
볼거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대에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적응 방식인 측면이 있지만 부정적 측면 역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정해진 시간 안에 될 수 있으면 더 재밌고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고 싶다는 게 주된 동기로, 소비자 선택권이 더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전반적으로 인내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진 세상"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간관념에 대한 인식은 꾸준히 있었지만 요즘 세대는 더 할 일이 많아지고 취향도 다양해진 동시에 정보 처리능력도 좋아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다만 어떤 기량을 쌓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 투입과 인내가 필요한 때도 있다"며 "'시성비'로 해결할 수 없는 과업들도 있는 만큼 균형감 있게 (디지털 기술 발전의) 장점을 취하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