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긴축 기조 속에서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달 들어 5대 은행에서만 가계대출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다시 3천억원 이상 늘어 금융권 전체로 4개월 연속 증가를 눈앞에 뒀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최근 다소 오르는 추세인데도 계속 가계대출이 불어나 통화 긴축 정책의 효과에 대한 의문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기 부진, 금융 불안 등을 고려하면 한은이 가계대출을 잡기 위해 당장 다음 달 기준금리를 쉽게 올릴 수도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예외 축소를 비롯한 금융당국의 거시건전성 정책 개선부터 주문하고 나섰다.
◇ 5대 은행 주담대, 두달 연속 1조원 넘게 증가할 듯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0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78조5천700억원으로 6월 말(678조2천454억원)보다 3천246억원 늘었다.
앞서 5월(677조6천122억원)에 2021년 12월(+3천649억원) 이후 1년 5개월 만에 처음 전월보다 증가(+1천431억원)한 뒤 6월(+6천332억원)과 이달까지 3개월째 증가세다.
세부적으로는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잔액 512조3천397억원)이 20일까지 9천389억원이나 불었다.
증가 폭도 이달 말까지 영업일이 약 열흘 정도 남은 상태에서 6월(+1조7천245억원)보다는 작지만, 5월(+6천935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다만 신용대출(잔액 108조5천221억원)은 지난달 말보다 4천68억원 더 줄었다.
5대 은행의 이런 추세로 미뤄,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도 4월부터 7월까지 넉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은 올해 3월까지 계속 줄다가 4월과 5월, 6월 각 2조3천억원, 4조2천억원, 5조9천억원씩 전월보다 늘었다. 특히 6월 증가액은 2021년 9월(+6조4천억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금융당국 통계에서도 은행·제2금융권을 포함한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은 4월(+2천억원) 이후 5월(+2조8천억원)과 6월(+3조5천억원)까지 3개월째 뛰고 있다. 갈수록 증가 폭도 커지는 추세다.
◇ 주담대 변동금리 0.12%p 올랐지만…"부동산 규제완화 등에 대출 계속 늘 것"
앞서 4∼5월의 경우 시장금리가 다소 떨어져 금리 부담 완화가 가계대출 증가세의 원인으로 거론됐지만, 6월 이후에는 시장금리도 다시 오르는 추세다. 따라서 최근 가계대출 수요는 금리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21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연동)는 연 4.350∼6.951% 수준이다. 약 한 달 전 6월 23일과 비교해 상당수 대출자에게 적용되는 하단 금리가 0.120%포인트(p) 올랐다.
6월 시장금리와 예금금리 상승 등이 뒤늦게 반영되면서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가 한 달 전보다 0.140%p(3.560→3.700%) 높아졌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3.960∼6.114%로 하단이 0.070%p 떨어졌지만, 변동금리 상승 폭과 비교해 하락 폭은 미미하다. 지표로 삼는 은행채 5년물의 금리가 같은 기간 0.049%p(4.233→4.184%) 떨어지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신용대출 금리(1등급·만기 1년·연 4.360∼6.360%)도 한 달 사이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 배경에 대해 "서울 등 수도권 주택 매수 심리가 회복되면서 아파트 매매가격이 오르고 주택 관련 대출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주택담보대출 LTV(담보인정비율) 상한 규제 완화,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등의 정책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금리가 지난해 말 정점을 찍은 뒤 올해 안정된 가운데 1월부터 시작된 특례보금자리론 인기와 함께 구입 목적의 신규 대출 신청이 늘었다"며 "부동산규제지역 해제, 민간택지 내 분양가상한제 지정 해제, LTV 등 규제 완화의 영향으로 서울 등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확산되면서 당분간 가계대출 증가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금방 늘 상황 아니다"라던 이창용 총재도 한달만에 "큰 우려"
한은도 금융 위기의 잠재적 뇌관으로서 가계대출 재증가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19일 이 총재는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금방 가계대출이 늘거나 부동산(가격)이 오르거나 할 상황은 아니고, 좀 지켜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관련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달 13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는 "여러 금통위원이 가계부채 증가세에 큰 우려를 표했다. 만약 급격하게 늘어나면 금리나 거시건전성 등을 통해 대응할 것"이라며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했다.
다만 한은이 당장 가계대출 안정만을 명분으로 다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반기 경기 회복이 불투명한 데다, 자칫 금리 재인상이 신용 경색을 불러 제2의 레고랜드·새마을금고 사태나 급격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 자신도 "가계부채는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단기적으로 급격히 조정하려고 하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부동산PF 문제나 역전세난, 새마을금고 사태 등이 사례"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 회의 등에 참석해보면, 가계대출에 대한 한은의 우려가 생각보다 크다"며 "그러나 경기 등 다른 요인들도 있기 때문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지도 못하고 올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이 6개월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도 당장 금리 재인상을 가계대출 문제의 해법으로 거론하기보다는, DSR 등 거시건전성 규제 개선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는 분위기다.
한은은 최근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연착륙 방안' 보고서에서 가계부채를 줄이고 연착륙에 성공하려면 거시건전성 정책 측면에서 ▲ DSR 예외 대상 축소 ▲ LTV 수준별 차등 금리 적용 ▲ 만기일시상환 대출 가산금리 적용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자금대출 정도만 제외하는 주요국들처럼 예외 없이 대부분의 대출을 DSR 규제에 포함하고 LTV가 높거나 만기일시상환을 선택하면 대출 금리를 올려 가계가 손쉽게 대출을 많이 받지 않도록 유도하자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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