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 가치는 미중 간 무역마찰의 바로미터다. 마찰이 심화되면 ‘절하’, 진전되면 ‘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가장 우려해 왔던 무역에서 시작된 마찰이 본격적으로 금융과 연계될 움직임이다. 앞으로 미중 간 마찰은 세계 경제에 이어 국제금융시장에서도 커다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중 간 마찰 과정을 살펴보면 직접적인 발단은 중국의 태도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수세적’ 입장을 보였던 중국이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공세적’으로 변했다. 당황한 미국은 같은 해 9월 1일부터 잔여분 3000억 달러(1차 340억 달러 25% 보복관세, 1차 2000억 달러 두 단계로 나눠 25% 보복관세 부과) 상당의 중국 수출상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더 이상 보복관세 부과로 맞대응 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던 중국으로서는 ‘1달러=7위언’, 즉 포치(破七)선 진입을 허용했다. 무려 11년 만에 일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포치선 진입은 안 될 것으로 봤다. 중국으로서도 실익이 크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다섯 차례 붕괴될 위험을 맞을 때도 중국 인민은행은 적극적으로 방어했다.
막상 뚫리자 충격이 컸던 국가는 미국이었다.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맞설 경우 주력해온 보복관세 효과가 무력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정수지적자를 메어줄 관세 수입도 줄어들게 된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치명타를 입게 되는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역(逆)플라자 합의 이후 사라졌던 ‘환율 조작의 악몽’이 되살아나 중국 이외 다른 교역국에게도 충격을 줬다.
2019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 조치는 두 가지 점에서 미국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파격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하나는 예정된 ‘시기’를 지키지 않은 점과, 다른 하나는 정해진 ‘규칙’를 어겼다는 점이다. 정치적 욕망에서 보복성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에 주요 교역국을 상대로 환율 보고서를 발표한다. 2019년 상반기 환율 보고서는 당초 예정일보다 한 달 이상 늦어진 5월 말에 발표했던 것도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인가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8월 중국에 대한 환율 조작국 지정 조치는 이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고 볼 수 있다.
‘2015 교역 촉진법’에 따라 새롭게 적용된 BHC(베넷-해치-카퍼) 요건으로 환율 조작국에 해당하는 환율심층 대상국으로 지정되려면 △대(對)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대비 경상수지흑자 3% 이상 △외환시장 개입이 지속적이며 그 비용이 GDP의 2% 넘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중국은 첫 번째 요건만 걸려있다. 오히려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기 이전의 중국 지위인 ‘환율관찰 대상국’에서도 빠졌어야 한다.
BHC 요건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공약은 어떤 경우든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작업을 검토해왔다.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 근거는 ‘1988년 종합무역법’이다. 동 법에서는 △대규모 경상수지흑자 △유의미한 대미 무역수지흑자 중 한 가지 요건만 걸려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한 마디로 미국 마음대로 환율 조작국에 지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1990년 전후로 한국, 중국 등 대미 흑자국이 집중적으로 환율 조작국에 걸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됨에 따라 미국은 첫 번째 제재조치로 ‘위안화 절하’ 대응수단으로 찾아낸 상계관세 부과다. 상계관세란 교역 상대국의 보조금으로부터 피해를 받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도 반덤핑 관세와 함께 인정하는 제재수단이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위안화 대폭 절하 등과 같은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 301조를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슈퍼 301조란 의회 승인 없이 행정명령으로 100% 보복관세를 때릴 수 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중국이 위안화 절하를 또다시 용인하고 있는 점이다. 물론 중국은 무역과 환율과의 비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기 대응적 요소 등을 감안한 현행 환율제도에서는 전일 경제지표가 부진하면 ‘절하’. 개선되면 ‘절상’해 고시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중국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어 그 자체가 마찰의 소지를 안고 있다.
미국의 공분을 더 불러일으키는 것은 중국도 위안화 절하가 불리한 점이 많은데 실제로는 행동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하는 경상거래 면에서 수출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자본거래 면에서는 자본유출을 초래해 금융위기 우려가 높아진다. 위안화 국제화 등을 통해 중국의 대외 위상을 높이는 계획에도 차질이 빚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위안화 절하’에 가장 명료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달러 약세’다. 하지만 초기에 나타나는 ‘J’ 커브 효과 때문에 내년에 예정된 대선을 치르기 이전까지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오히려 확대돼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 쉽게 가져갈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글로벌 화폐발행차익 (seigniorage)이 줄어들고 달러 자산의 평가손실도 커지는 부담도 있다.
'J'커브 효과란 특정국의 통화 가치가 평가절하될 경우 수출입 가격변화는 즉시 일어나나 이에 따른 수출입 물량이 변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정 시점까지는 무역수지가 더 악화된다는 이론이다.
<그림 1> 미국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시 한국 경제 영향
자료: 대외경제경책연구원(KIEP)
현재 국제통화제도에서는 미중 간 통화전쟁이 발생할 경우 가격기능에 의해 자율적으로 조정할 장치가 없다. 다른 국가 간의 환율 마찰도 마찬가지다. 1976년 킹스턴 회담 이후 국제통화제도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 국가 간의 조약이나 국제 협약이 뒷받침되지 않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국제간 불균형이 심화될 때마다 최대 적자국인 미국이 시정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독일, 일본 등과 같은 경상수지 흑자국은 이를 조정할 유인이 별로 없어 글로벌 환율전쟁이 수시로 발생했다. 이 때문에 국제통화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학자는 최소한 불균형 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 간 조약’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15년 12월 Fed가 금리를 올린 직후 위안화 가치가 대폭 절하되자 ‘상하이 밀약설((달러 약세-위안 절상을 유도하는 묵시적 합의)’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 후 Fed가 금리를 올릴 때마다 ‘제2 플라자 밀약설’이 단골 메뉴처럼 거론돼 왔다. 밀약설이 합의될 때는 ‘협정’으로 변한다(제2 플라자 밀약->제2 플라자 협정).
‘제2 플라자 협정’은 인위적인 조정인 만큼 합의 가능성은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이 ‘달러화 약세-위안화 절상’의 필요성에 달려있다. 조지 소로스의 위안화 투기설, 위안화 가치 40% 폭락설, 시진핑 정부의 본때론과 위안화 대폭 평가절하 용인설 등 중국은 위안화 관련 각종 위기설에 시달려 왔다. 중국처럼 상시적인 환투기 대상에 몰리는 국가는 외화방어능력이 약할 때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모리스 골드스타인 등이 제시한 특정국의 위기방어능력은 다양한 지표에 의해 평가되지만 외환보유액이 핵심지표라고 꼽는 것이 이 때문이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아직도 3조 달러가 넘는다. 일부에서 외환보유액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적정외환보유액을 따지는 세 가지 기준(IMF 방식, 그린스펀?기도티 방식, 갭티윤 방식) 중 최광의 개념인 갭티윤 방식으로 중국의 경우 2조 4천억 달러로 추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큰 문제는 없다.
‘제2 플라자 협정’은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필요한 만큼 언제든지 논의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지금은 논의조차 없다. 앞으로 미중 간 환율전쟁이 발생한다면 세계 경제 입장에서 불안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 이어 앞으로는 동북아 지역에서 지경학적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예고하는 상황에서는 우리 경제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한국경제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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