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 의사를 간접 전달한 외국인 피의자에 관해 수사보고서에 '도주·소재 불명'이라고 써 체포까지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에게 허위공문서작성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불법체류자인 피의자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출석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일부 사실을 누락했다는 것만으로는 허위공문서 작성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허위공문서작성·직권남용체포 혐의 등으로 기소된 경찰관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수사보고서에 체포 사유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재하지 않은 점은 인정되나 거짓이 있다거나 허위 작성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에 관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있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20년 6월19일 부산의 한 외국인 건설노동자 숙소에서 베트남 국적 B씨가 동료를 때린 사건의 수사를 맡았다.
A씨는 통역을 통해 B씨에게 자진 출석을 권유했으나, B씨는 "베트남에 빚이 많고 불법 체류 상태라 강제 출국당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
이후 B씨는 동료 직원의 설득으로 경찰에 출석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이같은 뜻을 경찰서에 전달했다.
그러나 출석이 예정된 당일 A씨는 다른 사건 수사로 외근 중이라며 출석을 보류시켰고, 이튿날 수사보고서에 '출석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하고 이후에는 휴대전화를 끄고 불상지로 도주한 상태. 피해자나 회사 관계자도 피의자에게 연락했으나 받지 않고 소재 불명인 상태'라고 기재했다. B씨의 자진 출석 의사나 출석 보류 경위는 적지 않았다.
결국 이런 수사보고서로 경찰은 7월10일 체포영장을 신청해 발부받았다.
이 사이에도 B씨는 출석할 생각으로 소환을 기다리고 있었고, 동료 직원을 통해 7월17일 자진 출석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지만 A씨는 일정 조율 사실을 내부에 밝히지 않았고, 경찰은 자진 출석 예정일에 B씨를 체포했다.
검찰은 A씨가 주요 사건 경위를 수사보고서에 뺀 채 경찰·검사·판사를 속여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아 집행하도록 했다며 그를 기소했다. B씨의 체포는 취소했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가 B씨의 출석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고, 동료 직원 등이 A씨의 소재를 정확히 몰랐다는 점에서 원심판결이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원은 "A씨 입장에서는 출석을 보장할 지위에 있지 않은 동료 직원과 통화로 당일 갑자기 출석 의사를 전달받은 셈으로, 수사보고서 작성 당시까지 도주한 상태가 계속됐을 뿐"이라며 "수사보고서가 허위라는 전제로 적용한 직권남용체포 혐의 역시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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