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불확실성은 증가한다. '불확실성 시대(uncertainty)'라는 용어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초불확실성 시대(hyper uncertainty)'에 접어들었다. 이전보다 더 영향력이 커진 심리적인 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로 긍(肯·긍정)과 '부(否·부정)', '부(浮·부상)'와 '침(沈·침체)'이 겹치면서 앞날을 내다보기가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 경제는 경기 사이클이 사라졌다든가, 있더라도 그 폭이 줄어들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정도로 장기 호황을 경험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년 이후 세계 경제는 그 어느 쪽도 옳은 결론이 아님을 보여줬다. 오히려 금융을 중심으로 네트워킹이 한층 진전되는 경제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커졌고 심리적인 요인이 얼마나 큰 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금융위기 이전의 경기 순환은 주로 인플레이션과 관련돼 발생했다. 경기순환이론대로 한 나라 경기가 호황을 지속해 인플레이션 문제가 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대신 경기는 하강 국면에 들어섰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경기순환은 침체가 북유럽 위기(1990년대 초), 아시아 외환위기(1997년), 일본의 장기침체(1990년대 이후) 등 국지적으로 발생했을 뿐 금융위기처럼 세계적인 침체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순환도 금융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종전과 같으나 △세계적으로 동반 침체가 진행됐다는 점 △금융 불안에서 실물경제 침체로 전이속도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랐다는 점 △경기하강 폭이 짧은 순간에 대공황 때와 버금갈 정도로 컸다는 점 △금융위기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진행형이라는 점이 다르다.
종전의 경기순환 패턴을 기초로 한 전망이 경제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측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예측기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이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중앙은행(Fed) 등 예측기관과 각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위기를 계기로 확인된 심리적인 요인과 네트워킹 효과 등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분기 이후 지속돼 왔던 경기 논쟁이 2020년대 진입을 앞두고 '대안정기(great stabilization)로 진입하는 것이냐' 아니면 '대침체기(great recession)로 다시 추락할 것인가'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금융위기가 또 다시 닥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금융위기가 반드시 온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모든 것이 바뀐다". 모든 예측기관이 전 세계인에게 역설하는 주문이다. 2차 대전 이후 경제활동을 주도해 왔던 글로벌 스탠더드와 전혀 다른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뉴 노멀은 종전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2008년 이후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을 주도해 왔던 미국과 유럽 등 서방선진 7개국(G7)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뉴 노멀 시대에 들어 세계 경제 최고 단위부터 바뀌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국제규범과 국제기구를 주도해 왔던 미국을 비롯한 G7에서 중국이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른 주요 20개국(G20)으로 빠르게 이동되고 있다. G20은 구속력이 없는 국제 협의체다. 앞으로 태동될 국제규범은 보다 많은 국가의 이익이 반영될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글로벌 추세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각국의 이익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글로벌화와 충돌이 잦아지는 추세다. 시기별로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심해져 신보호주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저지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는 기존 국제기구의 회의론이 일고 있다. 2010년 11월에 열렸던 G20 서울회담을 계기로 IMF는 쿼터 재조정이 이뤄졌다. 세계무역기구(WTO)를 비롯한 다른 국제기구도 IMF와 비슷한 운명을 걷고 있다.
경제학에 일어나는 변화도 주목된다. 지난 20년 동안 경제학은 거시에서 미시로, 이론에서 계량으로, 그리고 가능한 영역에서 실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 간의 경계선이 무너졌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대신에 인문학, 심리학, 생물학, 의학 등을 접목시킨 '행동주의 경제학', 이론보다 현실 문제 해결에 더 치중하는 '응용 경제학', 돈을 찍어 쓰자는 '현대통화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 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미국의 아비히지트 바네르지 MIT대 교수, 마이클 클레이머 하버드대 교수, 에스테르 뒤플로 MIT대 교수가 제시한 '무작위 대조연구(RCT?randdomize control trial)'다. 실험군과 대조군을 무작위로 나눠 지원한 뒤 사후 비교를 통해 정책효과를 분석하는 방법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기업에서 이윤이 많이 남는데도 재활용 기름을 쓰지 않는다면 재활용 기름값, 사용법 연수, 정보 공유 등을 지원한 뒤 가장 효율적인 지원책을 찾아내는 것으로 '넛지'라는 행동주의 경제학과 응용 경제학을 접목시킨 분야다. 빈곤 퇴치 등 모든 경제정책 분야에서 가장 많이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가정이 무너진다면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와 같은 시장실패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시장과 국가가 경제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혼합 경제나 아니면 국가 자본주의가 유행하고 있다. 규제 완화보다 규제 강화, 사적 이윤보다 공공선이 강조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도전이 많아지고 있다.
가장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 곳은 산업 분야다.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차별화를 통한 경쟁우위 확보 요구가 증대된 반면 후발 기업은 창의, 혁신, 융합, 통합 등 다각화 전략을 통해 경쟁력 격차를 줄여 나갈 수밖에 없는 새로운 공급여건이 정착되고 있다. 기업 내 혹은 기업 간 무역(intra or inter firm trade)이 활성화되면서 각국 간 경제가 세계가치사슬과 공급망 체인으로 연결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수요 면에서는 트렌드의 신속한 변화에 따라 고부가 제품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반면 이들 제품 소비에 드는 비용을 무료 컨텐츠 제공 등을 통해 줄여 나가는 이율배반적인 소비 행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각 분야에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인간 중심의 커넥션은 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종전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나눔, 기부 등 착한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증대되고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기업과 계층에 대해 가치와 평가가 부여되는 변화도 주목된다. '임팩트(empact=empathy+pact) 경제'다.
우려되는 것은 많은 분야에 걸쳐 변화를 몰고 오는 뉴 노멀이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착되지 못하는 경우다. 이 상황이 닥치면 뉴 노멀에 대한 실망감과 금융위기 이전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향수까지 겹치면서 규범의 혼돈(chaos of norm) 시대로 빠져들 가능성이 다.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 앱노멀(new abnormal) 시대가 된다는 의미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증가할수록 모든 경제주체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미래 예측이 전제돼야 한다. 뉴 앱노멀 시대에는 세계 속에서 각 경제주체의 위치 파악과 각자 지향할 미래상에 대한 방향 설정은 나침판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래 예측을 잘해서 국운을 좌우한 사례가 많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전형적인 저출산 국가였던 프랑스는 떨어지는 출산율에 위기감을 느낀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으로 현재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 부상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도 원유 매장량이 얼마 안 돼 고갈될 것으로 예측해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부동산, 관광, 무역, 금융 영역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한 결과 불모의 사막을 세계 최고의 도시국가로 변모했다.
미래 예측을 잘못한 사례도 의외로 많다. 1977년 당시 세계적인 디지털장비회사인 DEC의 켄 올손 회장은 '집에 컴퓨터를 갖고 있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해 회사 운명이 좌우됐다. 1983년만 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우리는 32비트 운영시스템을 절대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고 말해 나중에 실언으로 인정했다. 1985년 영국의 물리학자인 로드 캘빈이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의 비행은 불가능하다'고 예측했다.
미래 예측의 성공과 실패 사례는 한 국가와 기업, 금융사의 생존을 결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모든 경제주체는 다가올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비하고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 요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미래 예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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