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던 시민이 불법 현수막에 걸려 넘어져 머리가 깨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이를 설치한 업체 측은 모르쇠로 일관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2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도 평택에서 직장을 다니는 A(35)씨는 지난 6월4일 오후 2시쯤 한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뛰어가다 현수막의 길게 늘어진 줄에 목이 걸려 뒤로 넘어졌다. 그는 머리를 바닥에 강하게 부딪혀 피가 났지만 다행히 현장 근무차 안전모를 써 더 큰 부상은 피했다. 사고를 본 행인이 A씨를 부축해 길가로 데려가 주었지만, 그대로 앉은 채 30분 정도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다고 한다.
A씨가 신경외과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해보니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져 피가 났으며 뇌진탕 증세도 나타났다. 의사는 머리 외부로 출혈이 발생해 뇌출혈을 피할 수 있었지만 자칫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었다고 했다.
A씨는 사흘 뒤인 6월 7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자신의 사연을 고발했다. 문제의 불법 현수막은 횡단보도 옆 화단의 키가 작은 가로수에 낮게 걸렸으며 가늘고 긴 줄을 이용해 양옆으로 고정됐다. A씨는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자 화단을 가로질러 빨리 가려다 현수막 줄에 목이 걸렸다.
확인 결과 이 현수막은 평택시의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 설치된 것이었다. 불법 현수막을 단속하는 관할 동사무소는 이 현수막을 즉시 철거하고 관련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한편 A씨에게 피해 보상 방안도 안내했다. 과거 대법원의 비슷한 판례대로 불법 현수막 게시 업체에 보상받거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라는 것이었다.
A씨는 7월쯤 불법 현수막 업체에 연락했지만 현수막 줄에 걸렸다는 증거를 대라거나, 사고 발생 한참 후인 이제 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A씨 연락처를 차단했다. A씨는 이후로도 현수막 업체에 10여차례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고 했지만 소송이 하도 많아 빨라도 1년 이상 걸릴 예정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소송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됐다.
A씨는 "생계를 위해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현장 업무를 하고 있지만 머리가 계속 아프고 기억력도 떨어져 업무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면서 "불법을 저지른 업체와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행정 당국 모두 후속 조치도 없고 무책임하다. 나 같은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법 현수막 업체 관계자는 "매일 돈 내놓으라는 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 A씨의 주장도 앞뒤가 잘 안 맞는다고 판단한다. 현수막은 횡단보도에 걸어놓지 않고 그 옆의 화단에 걸어놓았는데 본인 실수로 넘어진 것 아닌가. 그리고 현수막에 걸려 넘어졌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동사무소 담당자는 "무허가 불법 현수막들이 너무 많아 수시로 단속을 나가며, 한번 단속하면 30~40개씩 떼어낸다. A씨의 사고가 발생한 현수막도 단속 대상이었다"면서 "A씨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 과거 대법원 판례와 국가배상 규정을 찾아 보상방안을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twilight1093@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