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반도체, 미·중·일에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

전효성 기자

입력 2024-10-07 06:00  

첨단산업 직접 보조금 필요성 제기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쟁국가들이 자국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자국기업에 대한 직접 보조금 지원을 꺼리고 있어서다.

6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한국과 경쟁국의 첨단산업 지원정책을 비교하는 '주요국 첨단산업 지원정책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자료에서는 첨단산업에 대한 한국의 정책 지원이 미흡한 결과 미국, 중국, 일본에 기술력 추격을 허용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 美, 칩스법으로 수십조 지원…韓 보조금 0원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반도체는 경쟁국가들의 보조금 지원이 빠르게 늘고 있는 업종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칩스법에 서명하며 "미국의 국가안보는 반도체 산업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어 10월에는 반도체 수출통제 개정 조치로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를 강화했다. 또한, 아시아 국가에 의존하던 반도체 생산을 자국에서 해결하기 위해 인텔에 85억 달러 보조금 투입 계획도 발표했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기 위한 전략을 추진 중이다. 2023년부터 중국 반도체 기업 SMIC에 2억7천만 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시작했다. 이에 더해 정부가 대주주로서 정부 주도의 투자와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산업 재부흥을 목적으로 연합 반도체 기업인 라피더스 설립에 63억 달러가 넘는 보조금을 이미 투입했다. 라피더스 설립에는 소니와 소프트뱅크, 키옥시아, NTT 등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참여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추가 지원방안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보조금 無 이차전지…韓, 점유율 하락 불가피

이차전지 업종도 마찬가지다. 국내 기업의 점유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이차전지 대표기업이 없어 전기차 시장 보호로 중국에 대응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을 앞세워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해 이차전지 생산 밸류체인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차전지 부품의 50% 이상이 북미 지역에서 생산·조립된 경우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미국 시장을 간과할 수 없는 이차전지 업체는 현지 생산을 검토하게 된다. 실제로 CATL과 LG에너지솔루션 등 많은 기업들이 미국내 생산공장을 건설했거나 계획 중이다.

중국 정부는 1990년 제8차 5개년 계획에서부터 이차전지 기업 지원을 예고했다. 중국 정부는 현재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인 CATL에 2011년 설립 당시부터 최근까지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또, 보조금 지급 범위를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로 확대한 상황이다.

일본도 최근 이차전지 산업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도요타에 8억5천만 달러 규모의 이차전지 연구개발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다. 또한, 국내 이차전지 생산시설 확보에도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반도체 산업과 마찬가지로 이차전지 산업에도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상황이다. 국내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21년 30.2%에서 2022년 23.7%, 2023년 23.1%로 2년 만에 7.1%p 하락했다.

▲ 韓, 첨단산업 직접환급 제도 필요…컨트롤 타워도 만들어야

주요국의 반도체·이차전지 산업 정책의 공통점은 정부가 개입해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조금 정책이 주로 활용되고 있는데, 첨단산업에서 가격경쟁력과 기술력 확보에는 보조금 정책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기업 대상 세액공제와 같은 간접 지원에 나서고 있다. 현재 세수 부족 상황을 고려했을 때 미국이 시행 중인 '직접환급' 제도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직접환급 제도란 기업이 납부할 세금보다 공제액이 더 크거나 납부할 세금이 없는 적자 기업의 경우, 그 차액 또는 공제액 전체를 현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즉각적인 기업 현금 유동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꼽힌다.

아울러 첨단산업 정책을 아우르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 일본은 모두 경제안보 컨트롤 타워를 강화했다.

미국은 2021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해 단일 조직에서 산업과 안보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총리 산하였던 과학기술부를 지난해 국가주석이 관할하는 당 중앙위원회(중앙과학기술위원회)로 격상했다. 일본은 2021년 장관급 조직인 경제안보담당관실을 설치해 총리 주도의 범부처 통합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국가전략기술특별위원회'가 올해 2월 출범했지만, 유관 부처별(과기부·기재부)로 다른 법률과 기준에 대해 교통 정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한국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며 "관련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과감한 재정지원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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