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운용 메리츠화재도 '경영유의'
업계 "회계 규제 혼란…연착륙 필요"
금융당국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들의 '낙관적 가정'을 꼬집으며 실적 부풀리기를 경고하고 있지만, 반대로 '보수적 가정'을 적용한 보험사에도 경영유의를 내린 선례가 있어 업계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계리적 가정에 대한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는 만큼 제도 연착륙을 위한 추가적인 대안책 마련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은 연말 결산을 앞두고 당국이 제시한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 적용을 위해, 회계법인을 통한 시뮬레이션 등을 진행 중에 있다. 금융당국이 보험사 자의적으로 낙관적인 가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경고한 만큼, '보수적 가정'을 적용한 새 회계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당국의 기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당국이 보험사들의 낙관적 가정뿐만 아니라 보수적 가정에 대해서도 경고를 했기 때문이다. 앞서 메리츠화재는 지난 9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이사회 운영의 실효성 강화와 성과보수체계 정비 등 18건의 경영유의를 부과받았다. 그 중 '계리적 가정 설정과 검증 절차 강화'의 건도 포함돼 있다.
IFRS17는 보험사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제도로, 계리적 가정을 어떻게 반영하냐에 따라 보험사의 실적이 좌우된다. 제도 시행 후 보험사는 최적의 계리적 가정에 따라 보험 부채를 평가해야 하는데, 메리츠화재의 경우 실질과 달리 보수적으로 가정을 설정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실제 김용범 메리츠금융 부회장은 지난해 컨퍼런스콜에서 "메리츠는 예정 대비 실제 손해율이 90%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보수적으로 (계리적 가정을) 쓰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국은 해당 경영유의건과 관련해 "회사가 의도적으로 계리적 가정을 실질과 달리 보수적 또는 공격적으로 설정하는 경우에는 보험부채가 왜곡돼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의 계리적 가정에 대해 이뤄진 첫 제재 조치다.
그간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회계제도 변경 이후 급격한 실적 하락을 우려, 낙관적 가정을 적용해 일부 실적 부풀리기가 발생했다고 지적해왔다. 특히 보험사가 과도하게 낮은 손해율을 가정할 경우 추후 예상과 실제의 차이인 예실차가 크게 발생하게 된다. 반대로 메리츠화재의 경우 오히려 손해율이 높을 것으로 가정하는 보수적 가정을 설정했지만, 이에 따른 예실차가 커 당국의 경영유의를 받은 케이스다.
이후 당국은 이달 보험사들의 낙관적 가정을 막기 위해 판매 비중이 높은 무·저해지 상품 해지율에 대한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했다. 무·저해지 상품은 가입자가 해지 시 환급금이 없거나 적어 보험료가 일반 상품보다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환급금이 없는 상품이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는 해지가 많을 수록 마진이 높게 잡히는 상품으로 꼽힌다.
당국은 보험사들이 이 상품의 해지율을 낙관적으로 가정해 실적을 부풀렸다고 보고, 보수적인 가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인 '원칙모형'을 제시했다. 이 모형은 무·저해지 상품 해지율을 산출할 때 완납 시점 해지율이 0%에 수렴하는 '로그-선형모형'을 적용하도록 했다.
일부 보험사의 특성을 고려해 예외모형을 허용한다고는 했지만, 사실상 원칙모형을 적용하지 않으면 당국의 우선검사 대상이 되는 '집중 타깃'이 될 수 있어 업계에선 눈치보기가 한창이다.
당국은 가이드라인 발표에 앞서 이달 초 보험업계 임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덜 빼먹고 나중에 남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강력한 문구로 보수적 가정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당국이 제시한 원칙모형은 보수적인 가정을 강제하고 있는 만큼 무·저해지 상품의 예상 해지율을 낮추면 일부 보험사의 부채가 급증하고, 계약서비스마진(CSM)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결국 이에 따른 예실차 확대도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업계는 보수적인 가정도, 낙관적인 가정도 모두 예실차가 확대되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당국에서도 보수적 가정을 적용하면 몇년간 예실차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는 있지만, 실제 예실차가 큰 보험사가 경영유의를 부과받은 선례가 있으니 업계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당국에서 비조치의견서를 제시해주는 방안 등 연착륙할 수 있는 대안책이 있어야 이번 가이드라인 적용에 대한 혼란이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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