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일본 경제에 가장 큰 관심사는 '아오키 법칙'에 걸려있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교체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아오키 법칙이란 내각과 집권당의 합친 국민 지지도가 50%를 밑돌아 좀비 국면에 처한 것을 뜻한다. 결국 낮은 국민 지지도를 극복하지 못한 기시다 총리는 연임 도전을 포기하고 이시바 시게루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시바 정부의 실질적인 첫해가 될 2025년에 일본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복원력(resilence)'과 관련해 성장률이 갖고 있는 의미를 뜯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2분기 이후 분기별 성장률을 보면 전형적인 '더블 딥(+1.0%→-1.0%→+0.1%→-0.6%→+0.5%→+0.2%)'에 빠진 점이다. 경기순환 상 특정국 경제가 더블 딥에 빠졌다는 것은 복원력이 약화됐다는 의미로 침체 기간이 장기간 지속된다.
총수요 항목별 소득 기여도(Y=C+I+G+(X-M), Y:국민소득, C:민간 소비, I:설비투자, G:정부 지출, X-M:순수출)에서는 최대 항목인 민간 소비가 리먼 사태 이후 최장기간 동안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2024년 내내 엔·달러 환율이 140엔 이상 높은 수준이 지속됐음에도 순수출 기여도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점도 눈에 띤다.
현재 일본 경제가 갖고 있는 성장장애요인을 단순생산함수(Y=f(L,K,A), L=노동, K=자본, A=총요소생산성)로 살펴보면 노동 섹터는 인구절벽과 저출산·고령화로, 자본 섹터는 토빈 q 비율이 1을 밑돌아 생산성이 여전히 낮다. 총요소생산성도 불법 비자금 사건 등으로 좀처럼 제고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경제 3면 등가 법칙(생산=분배=지출)상 곳곳에 내재해 있는 '병목' 현상도 심각하다. 생산과 분배 간에는 알버트 허쉬만 교수의 전후방 연관효과(backward & forward linkage effect)가 떨어져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주요인이다. 분배와 지출 간에는 높은 저축률에 따른 이른바 '절약의 역설(saving’s paradox)'에 걸려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일본 경제처럼 저량(stock)과 유량(flow) 변수에서 성장장애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을 때는 모든 경제정책은 '긴축'과 '부양'의 성격과 관계없이 반짝 효과만 나는 캠플 주사에 그친다. 주체적인 면에서 재무부와 일본 은행(BOJ), 스펙트럼 면에서 재정과 통화뿐만 아니라 엔저(혹은 엔고) 등 환율정책에까지 해당한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정책 기조를 변경하거나 같은 정책이라도 자주 내놓으면 부작용은 더 심하게 나타난다. 현재 일본은 국가채무비율이 270%가 넘어 재정정책 여지가 거의 없다. 장기간 지속된 아베노믹스로 통화와 환율정책에서도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BOJ가 출구전략을 속도 있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 일본 경제를 짊어진 이시바 총리가 난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시급한 것은 기득권 카르텔을 끊어 국민 지지도를 끌어올려 아오키 법칙에 걸린 함정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정책 신호에 대한 정책 수용층의 반응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어떤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병목 현상을 푸는 것도 중요하다. 최대 병목 변수인 높은 저축을 소비로 유도하기 위해 저축을 쓰면 쓸수록 세제 혜택을 주는 '부(負)의 저축세(negative saving’s tax)'를 도입해야 한다. 산업연관표(I/O)상 병목 현상은 단기간에 풀기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주식 대중화와 주주 환원율 제고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엔저는 '마샬-러너 조건((외화표시 수출수요 가격탄력성+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 가격탄력성)>1)', 엔고는 '내수 확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통화정책을 변경하는 것보다 재정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과다한 국가채무 제약 여건에서는 '균형재정승수=1'이란 점을 착안한 간지언 정책을 부활시키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다. 예측기관은 2025년 일본 경제 성장률이 1% 내외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2024년 0대 성장률에 따른 기조 효과를 고려하면 체감적으로 경기가 좋아진다고 느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이시바 정부가 낮은 국민 지지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기에 사임하면 일본 경제는 또 한차례 격랑에 휘말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경제 회복이 쉽지 않다면 2025년에는 일본 은행(BOJ)이 추가적으로 금리를 올릴 것인가와 엔·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도 2024년 이상으로 관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정국의 통화 가치는 머큐리(Mecury·펀더멘털)와 마스(Mars·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엔화 가치는 금리차와 환차익을 노리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2023년 11월 초 엔·달러 환율이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50엔선이 뚫린 이후 일본 정부가 엔화 가치를 강세로 돌려놓기 위한 환시 개입이 거듭 실패했다. 재무성이 주관한 달러 매도 개입은 캐리 자금 여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개입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외환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인 외화만 낭비했을 뿐이다.
가뜩이나 아오키 법칙에 걸려있는 여건에서 환시 개입에 실패했다는 비판까지 거세지자 당시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은 서둘러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에게 금리를 올리라고 압박을 가했다. 마침내 2024년 7월 말에 열렸던 일본 은행(BOJ) 회의에서는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와 모태기 간사장의 금리인상 압력은 종전과는 180도 바뀐 태도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순이지 않느냐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았다. 이러다간 BOJ가 정치적 시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는 우려까지 나왔다. 결국 이 부담으로 기시다 총리는 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기시다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출구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은 동일하다. 우에다 총재의 고민도 깊었다. 과연 이시다 총리의 추가 금리 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만큼 일본 경제 여건이 추가로 금리를 올릴 만큼 좋지 않기 때문이다.
우에다 총재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 압력에 굴복하면 자신의 임기는 보장받겠지만 BOJ의 독립성은 훼손된다. 다른 하나는 거부하면 BOJ의 독립성은 유지하겠지만 자신은 조기에 교체당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우에다 총재는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파월 Fed 의장보다 정치적 성향이 높은 점이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일본, 한국과 같은 대미국 무역 흑자국의 통화 가치가 지나치게 약세지 않느냐는 미국의 입장도 엔·달러 환율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발언을 계기로 미국이 일본과는 제2 플라자 협정을 체결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달러 환율은 260엔대에서 79엔대로 급락했다.
제2 플라자 협정을 체결할 것이라는 시각도 지금은 1차 플라자 협정을 체결할 당시와 다르다. 플라자 협정 체결을 주도해야 할 미국은 경제패권을 다투는 국가와 최대 무역 적자국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설령 제2 플라자 협정이 체결하더라도 펀더멘털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 1차 플라자 협정처럼 효과를 보기도 어렵다.
결국 2025년에도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해 엔화 가치가 강세가 될 만큼 일본 경제가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 계파에서 속해 있지 않고 국민의 지지도가 낮은 이시바 총리가 자민당에 흔들리거나 스스로 물러나지 않더라도 주도력이 없을 때는 엔저 시대가 재현될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선진국 중앙은행의 피벗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금융위기 이후 지속돼 왔던 캐리 트레이드 여건이 오랜만에 변화되고 있다. 주요 10개국 통화 가운데 저금리 3개국 통화를 차입해 고금리 통화에 나올 수 있는 수익률 지표인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 지수도 15년 이상의 상승세에서 벗어나 하락하는 추세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 중앙은행이 금융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모두가 저금리를 지향해 각국 간 금리 차가 확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5년에도 금리 인상에 앞서갔던 Fed가 피벗 행렬에 뒤늦게 동참함에 따라 주요국 간 금리 차는 다시 축소될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2025년에 캐리 트레이드는 각국 간 금리 차에 따른 수익보다 환차익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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