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명품 브랜드가 새해부터 경쟁적으로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고환율, 원자재 가격 급등을 인상 배경으로 꼽고 있지만 '가격을 올려도 잘 팔린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업황이 전반적으로 악화한 백화점은 쓴웃음을 짓고 있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스위스 시계 제조사 롤렉스는 새해부터 데이저스트 오이스터스틸·화이트골드 36mm 국내 판매 가격을 기존 1,292만원에서 1,373만원으로 6% 이상 인상했다. 서브마리너 오이스터스틸 41mm도 1,306만원에서 1,373만원으로 올랐다. 롤렉스는 지난해에도 1월, 6월 두 차례 가격 인상에 나섰다.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는 이날부터 의류, 가방 등 전 품목 가격을 평균 10% 인상한다. 이탈리아 브랜드 로로피아나 역시 오는 4일부터 국내에서 일부 제품 가격을 약 15% 올린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산하 브랜드 루이비통과 샤넬, 구찌, 프라다 등도 연초 주요 품목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알려진다. 가격 인상 전에 제품을 구입하려는 수요로 주춤했던 '오픈런'도 재현되는 모습이다.
명품 브랜드는 제품 전량을 수입에 의존한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극심한 환율 변동은 가격 인상 요인"이라면서도 "소비 심리를 자극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봤다. 이른바 '베블런 효과'다. 일부 계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 때문에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으로, 명품 브랜드 다수가 베블런 효과에 기대고 있다는 의미다.
백화점 VIP층은 명품 브랜드 매출을 굳건히 뒷받침하고 있다.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VIP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절반 이상이다. 실제 2년 연속 연매출 3조원을 달성한 신세계 강남점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연간 1,000만원 이상 구매한 VIP 누적 매출 비중이 51.3%에 달했다.
백화점이 명품 브랜드를 통해 얻는 직접적인 이익은 크지 않다. 백화점은 명품 브랜드에 매장을 내주고 매출 일부를 수수료를 받는 구조를 취한다. 업계에서는 "명품 브랜드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국내 다른 브랜드보다 훨씬 낮다"며 "백화점 입장에서 남는 장사는 아니"라고 긔띔했다.
그렇다면 백화점이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려는 이유는 뭘까. 백화점은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빌려 이커머스와 차별화된 '고급화'를 꾀한다.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려는 VIP는 물론 일반 소비자까지 백화점으로 끌어 들여 매출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다만 고물가로 소비 심리가 위축된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명품 브랜드의 선전이 백화점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을 공산이 커져서다. 한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의 집객 효과를 다른 매장으로 이끄는 게 쉽지 않아졌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 대비 12.3포인트 급락한 88.4로 집계됐다. 2020년 3월 이후 최대 폭 하락이다. 서울에 위치한 핵심 점포를 제외한 대다수 백화점 실적은 부진한 상황이다.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은 오는 6월 폐점을 앞두고 있다. 롯데백화점 역시 센텀시티점 매각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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