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시 주석에게 회의론이 부는 것은 자신에게 주워진 최대 책무부터 해결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1921년 설립된 중국 공산당은 100년이 되는 2021년에 인민 모두가 평등하게 잘사는 ‘샤오캉’ 사회를 구축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2012년에 취임했던 시 주석은 그 어느 것보다 이 과제를 마무리하는 것이 최대 임무였다.
하지만 집권 이후 중산층이 무너져 인구 피라미드 상 밑바닥에 해당하는 빈곤층(BOP)이 두터워지고 이 계층에 속하는 인민이 느끼는 경제고통지수는 공산당 창당 이후 최고조에 달했다. 시 주석은 샤오캉 사회 구축 실패에 따른 반성조차 없어 오히려 2022년 10월에는 절대 군주에 해당하는 ‘영수’로 등극했다.
<그림 1> 생산자 물가로 본 중국 경제 디플레이션 상황
자료 : 중국 국가통계국
둘째, 목표 성장률을 연속해서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시 주석에게는 부담이다. 계획경제에서 목표 성장률 달성 여부는 최고 통수권자의 능력 평가에 직결된다. 2024년 2분기 이후 두 분기 연속 성장률이 목표치에 미달하자 중국 내부에서조차 중진국 함정(MIT·middle income trap)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론이 일고 있다.
사회주의 성장경로 상 외연적 단계에서 내연적 단계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기 증후군이 더 두터워지는 상황이다. 임금·금리·세율·땅값·행정규제 분야에서의 5고(高) 현상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을 뿐과 아니라 외국인과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은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셋째, 위안화 국제화 과제도 흔들리고 있다. 시 주석이 영수로 등극한 이후 위안화 국제화 과제의 바로미터인 위안화 가치가 추세적으로 떨어지면서 급기야는 포치선(1달러=7위안)마저 내줬다. 새해 들어 위안화 가치는 7.37위안 선까지 떨어져 올해 가장 비관적으로 본 노무라경제연구소의 7.3위안선을 밑돌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 과제는 2021년 1월 바이든 정부 출범 전후로 두 단계로 나뉜다. 1기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준비통화에 편입될 만큼 성과를 냈던 시기다. 2기에는 1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탈달러화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미국의 견제로 밀리는 분위기다. 위안화 가치가 흔들린다면 탈달러화 구상은 요원한 일이다.
넷째, 이탈리아 탈퇴를 계기로 또 하나 시 주석의 과제인 일대일로 계획이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참가국의 경제 예속화’라는 숨은 의도를 품고 있었던 이 계획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초기 참가국인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이 국가부도에 몰리면서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들어서는 1970년대 초반 미국의 중남미 세력 확장 과정에서 나타났던 종속이론이 중국을 대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일대일로의 전신인 해외자원확보 계획에 참가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자원 주권 찾기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국가들은 중국, 미국 이외 제3의 길을 찾고 있어 새해에는 경제 다극화 현상이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섯째, 공산당 대회 이후 시 주석이 도입했던 중국 경제 운영체계가 흔들리고 있는 점이다. 덩샤오핑 체제 이후 중국 경제를 지탱해 왔던 양대 축인 개방경제와 시장경제가 각각 폐쇄경제, 계획경제로 선회됐다. 핵심 경제부처도 미국을 비롯한 해외유학파보다 시 주석의 동문이 주축이 된 순수 국내파로 채워졌다.
시 주석이 영수로 등극한 이후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산당 대회가 끝나자마자 제로(0) 코로나 대책을 풀면서 리오프닝 효과를 기대했던 시 주석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2024년 3월 양회 대회 이후 채권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 자금 이탈세도 심상치 않다.
미국과의 경제패권 다툼에서 중국이 밀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장기 집권을 꿈꾸는 시 주석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위안화 국제화, 일대일로, 디지털 위안화 등을 통한 시 주석의 최대 책무인 ‘팍스 시니카’ 구상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30년 뒤로 후퇴했다는 쇠퇴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총체적 위기다. 결국 시진핑 정부가 2024년 9월 이후부터 대규모 부양책을 잇달아 발표해 왔다. 종전과 달리 금융과 재정 관련 모든 수장이 직접 나서는 데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 경제와 증시 현 상황이 심각하고 부양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동시에 암시한다. 시 주석도 이번 대책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뒷얘기까지 들린다.
모든 경기와 증시 부양책은 위기를 낳은 본질 해결에 얼마나 접근했는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부양책의 규모가 클수록 더 그렇다. 2차 대전 이후 위기 경험국의 실증적 사례를 점검해 보면 기득권의 고통이 따르는 위기 본질 해결을 외면하고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캠플 주사형 대증요법에 그치면 더 큰 위기 국면이 닥친다.
새해 벽두부터 부양책을 서둘러 발표하고 있지만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 경제보다 더 심각한 ‘잃어버린 30년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점도 이 때문이다. 올해 중국 경제는 부양책의 효과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엇갈리고 있지만 일부 예측기관은 의외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신흥국 경제 앞날은 두 가지 당면 현안에 달려있다. 가장 큰 문제는 2020년부터 돌아오고 있는 달러 부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신흥국의 명암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은 올해도 4000억 달러 이상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금리를 어디까지 내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여전히 강한 점을 고려하면 신흥국 원리금 부담을 좌우하는 국채금리는 크게 내리지 않게나 오히려 올라가는 수수께끼 현상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2024년 9월 빅컷을 단행한 이후 Fed도 이 문제에 시달려 왔다.
<그림 2> 주요 신흥국 인플레이션 추이
자료 : 한국은행, 경제전망 보고서
달러 부채 부담으로 ’금융위기가 어느 국가에서 발생할 것인가’도 관심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IMF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지표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외채상환계수로 판단해 보면 베네수엘라, 파키스탄, 이란,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높게 나온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필리핀,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은 그다음 위험국이다.
금융위기 발생 고위험국으로 분류되는 중남미 국가는 외채위기로 학습효과가 있는 데다 미국과의 관계도 비교적 괜찮다. 하지만 이란, 터키처럼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거나 협조하지 않는 국가와 중국에 편향적이거나 일대일로에 과도하게 참여하는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과 같은 이슬람 국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더라도 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는 신흥국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속하는 국가 위주로 재편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유럽 국가, 일본 등 선진국들이 속해 있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에 대비해 인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와 남부 아시아에 속하는 국가를 통칭하는 새로운 용어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 중에서도 단연 인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한 니헨드라 모디 총리는 인도 경제는 서민과 젊은 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해가 지날수록 탄력을 받고 있다. 인도 경제의 고질병이었던 화폐개혁과 상품 서비스 세제(GST) 개편도 마무리해 놓았다. 대부분 예측기관은 중국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집권 3기를 맞아 모디 정부는 로스토우(W.W. Rostow) 교수의 경제발전 5단계 동태 이론에 따라 ‘도약 단계’에서 ‘성숙 단계’로 순조롭게 이행해 고성장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미국에 이어 제2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느냐에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디 정부의 경제정책의 이론적 토대이자 경제정책 운용의 근간은 ‘모디노믹스’다. 집권 1기부터 중장기 성장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제조업을 중심으로 설비투자와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성과도 예상보다 높게 거뒀다. 집권 2기 후반기에는 고성장에 따른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지만 집권 3기에는 이 문제를 해결해 제2의 도약을 한다는 계획이다.
저항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된 직후 오랫동안 집권하는 과정에서 뿌리가 깊은 네루-간디 가문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의 영향력이 여전히 높다. 사회적으로는 ‘카스트’와 사상적으로 ‘간다라’ 이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정부처럼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해 개혁과 구조조정이 정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림 3> 인도 실물 경제지표 추이
자료 : 인도 통계청, 한국은행
경제적으로도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경상적자에서 벗어나느냐도 인도 경제 앞날을 위해 중요한 변수다. 3기 대내 정책에서는 구조조정을 통해 저항 세력의 기득권을 차단하고 대외 정책에서는 미국이 이끄는 경제 동반자 협정(EPA)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브릭스 등에 동시에 참여해 중간자 위상을 지킬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도 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그 어느 국가보다 크다. 공식적으로 인도 인구가 중국을 초월했다. 내수 비중도 75%에 달해 미·중 간 마찰 등 대외변수로부터 충격이 완충시킬 수 있다. 경제연령도 25세(중국 37세, 한국 47세) 전후로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요구하는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인구 구조를 갖고 있다. IT 잠재 능력도 뛰어나다. 예측기관은 2025년에도 6∼7%대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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