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광훈 기자 = 지속적인 유가 하락과 인구 급증으로 걸프 왕정 국가들이 예외없이 내핍 정책과 경제구조 개혁으로 내몰리고 있다.
강력한 권한의 의회가 있고 상대적으로 언론 자유가 보장되는 쿠웨이트의 경우, 긴축조치를 실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거의 한 세기 전 석유가 채굴되기 시작한 이래 대부분의 걸프 왕정국가들은 분명한 사회계약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의 왕실은 그들의 판단대로 통치를 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그 대신 국민들은 소득세와 판매세를 면제받고 연료, 주택, 전기료 등에서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국민들은 비대해진 정부 관료조직에 별 어려움 없이 고용됐다.
쿠웨이트 의회 5선 의원이며 진보성향의 베테랑 정치인인 압둘라 알니바리는 "과거 쿠웨이트 국민은 아주 열심히 일했다"며 "불행히도 석유 덕분에 부가 흘러들어오면서 이같은 장점이 점차 약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하루 세 시간 일하거나 아예 일도 하지 않는 정부 일자리를 찾고 있다"며 "너무나 만연한 현상이라 사회 가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젠 쿠웨이트처럼 엄청난 부자 왕국들도 이같은 방식을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쿠웨이트의 2015~2016 회계연도 재정적자는 17%에 달했다. 다른 걸프 왕국들처럼 쿠웨이트도 부가가치세 도입과 각종 보조금 삭감을 고민하고 있다. 하루 종일 에어컨이 풀가동되는 나라에서 에너지 보조금 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한다.
쿠웨이트 통치자인 셰이크 사바 알아흐마드 알사바는 지난달 "국가 예산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중한 조치를 통해 공공지출을 줄이고 낭비와 국부 유출을 막는 것이 불가피해졌다"고 토로했다.
이웃 사우디 아라비아의 재정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 때문에 '비전 2030' 프로그램에 따라 이미 각종 보조금과 인프라 계획, 공무원 임금의 대폭 삭감을 단행했다. 정부 조치들은 당연히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감히 내핍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왕실의 방만한 지출을 비판할 수가 없다.
이에 반해 쿠웨이트는 강력한 선출 의회를 갖고 있고 상대적으로 언론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걸프 국가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고 이를 중단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건 일단의 신진 세력들이 의회에 입성했다.
이전 총선을 보이콧했던 무슬림형제단 계열의 모하메드 달랄 의원은 석유부문에 편중된 "경제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현재의 관리체제로는 이같은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젊은이들은 이제 공격적이며 일자리와 주택을 원하고 있다"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공세가 정부와 왕실을 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쿠웨이트의 50석 의회에서 유일한 여성 의원이며 진보성향인 사파 알하쉼도 "지출 구조를 개혁하고 GDP를 늘리고 싶다면 국민의 주머니에서부터 시작하려고하지 말라. 정부 조직 구조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하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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