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방문 늘고 역사 해설 진행…일본 언론·관광객 발길 잇따라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유관순 열사처럼 일본 강점기에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한복 입고 소녀상을 찾았습니다."
6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흰 저고리, 검정 치마를 한 한복 차림의 '소녀' 4명이 찾아왔다.
이들 중 3명은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겉모습이 영락없는 소녀들이었지만 이들은 벌써 3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는 47세 동갑내기 친구다.
수년간 외국에 살던 친구인 정민아(47) 씨가 최근 잠시 귀국하면서 소녀상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친구들은 이왕이면 한복을 입고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소녀상을 배경으로 셀카도 찍고 소녀상 옆 모금 인명 판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단체 묵념을 한 뒤 '소녀' 4명은 자리를 떴다.
호주 멜버른에 거주하는 정씨는 "우리나라에 소녀상도 마음대로 못 세우고 우리 공무원과 경찰이 시민을 끌어내고 소녀상을 철거하는 뉴스를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소녀상이 일본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씨는 "외국에 살다 보니 힘없는 민족의 서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며 "정부가 일본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국민을 믿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다음에는 중학생인 딸과 함께 귀국해 소녀상을 찾을 예정이다.
소녀상 설치에 발끈한 일본 정부가 연일 강경 발언과 조치를 쏟아내는 가운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이 부산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강제 철거된 뒤 야적장에 방치됐다가 다시 재설치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0일 세워진 소녀상에는 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 '주한 일본 대사·영사 소환' 등 보복 조처에 나섰지만 소녀상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커지는 상황이다.
영화 '귀향'을 보고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고 소녀상을 꼭 보고 싶어 찾아왔다는 대학생 김준원(20)씨는 "진정한 사죄는커녕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큰소리치는 일본의 대응에 분노를 느낀다"며 "국민이 힘을 합쳐 소녀상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소녀상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들이 많았다.
9살 아들과 함께 소녀상을 찾은 김지연(40·여) 씨는 "소녀상 설치로 이렇게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그만큼 한일 역사가 왜곡돼 있다는 증거"라며 "우리 아이에게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소녀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소녀상 추진위는 평일 오후 4∼6시, 주말에는 오후 2∼5시까지 소녀상 방문자를 위한 해설시간을 마련했다. 소녀상이 역사교육의 장이 된 것이다.
소녀상을 찾는 일본인도 있었다.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일본인 남성은 서투른 한국말로 "소녀상을 보고 싶어 왔다"며 "크게 무섭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택시 2대를 나눠 타고 와 소녀상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가는 일본 여성 관광객들도 있었다.
소녀상을 둘러싼 마찰이 한일 정부의 외교 갈등으로 비화하자 아사히TV, 후지TV, NHK 등 일본 언론들은 소녀상을 찾는 시민을 인터뷰하는 등 열띤 취재에 나섰다.
소녀상 건립 추진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소녀상 추가 설치로 인해 위기를 맞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라고 한국 정부에 겁주는 꼴"이라며 "위안부 합의 전면 무효화와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선전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반발해 결성된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는 지난 1년간 시민 모금, 서명운동, 1인 시위를 통해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동구청의 반대로 난항을 겪다가 지난달 28일 일본영사관 앞에 기습적으로 소녀상을 설치한 뒤 강제철거 당하고 시민의 지지에 힘입어 이틀 만에 소녀상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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