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 위기 넘기고 정권 말 '마무리 마운드'에 선 유일호

입력 2017-01-08 06:31  

단명 위기 넘기고 정권 말 '마무리 마운드'에 선 유일호

"내세울 것 없지만, 특별히 먼지 날 것도 없는 장관"

"무색무취 특징이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장점 될 수도"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움직임에 '광폭 행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12일 '부총리직 유지'가 확정된 이후다.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새 부총리 내정 등 한달여 앞서 단행된 박근혜 대통령의 개각을 사실상 없던 일로 하고 유 부총리의 직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정치권도 황 권한대행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유 부총리의 행보에도 힘이 붙기 시작했다. 이전과 비교될 만큼 민생시찰도 잦아졌고 경제수장으로서의 메시지도 더 강경해졌다.

부총리직 유지 확정 직후인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내가 컨트롤타워가 되고 경제팀이 혼연일체가 돼 민생 살리기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경제수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하기도 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화훼시장, 인천신항, 노인복지관 등을 직접 돌며 민생을 점검했고 각 부처 장관들에게도 발로 뛰는 민생 현장 점검을 주문했다.

지난 4일 열린 긴급 재정집행 관계장관회의에서는 각 부처 장관들에게 1분기 재정 조기 집행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할 것으로 독려하면서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유 부총리의 달라진 태도는 박 대통령의 개각 발표부터 황 권한대행의 부총리직 유지 결정까지 한 달여를 '퇴임을 앞둔 반쪽 장관'으로 지내면서 스스로 고민을 거듭한 결과로 보인다.

유 부총리는 개각 발표 이후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30일 전직 재무장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빨리 나가야하는데…(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저는 나간다고 생각하니 힘이 든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해 눈길을 끌었다.

사면초가와 같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단명 장관'으로 남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민과 답답한 마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쑥 튀어나오고 만 것이다.

유 부총리는 이미 2015년 국회의원 신분으로 국토교통부 장관에 올랐다가 242일 만에 정치권으로 복귀한 탓에 박근혜 정부의 최소기간 재임 경제부처 장관이라는 반갑지 않은 '타이틀'이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11월 발표대로 개각이 진행됐다면 박근혜 정부의 '단골 단명 장관'이라는 오명을 남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 부총리는 취임 이후 자신만의 브랜드가 없는 무색무취의 장관이라는 냉소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실제 이전 부총리와 달리 유 부총리만의 철학이나 색깔이 묻어난 '유일호표 정책'은 찾기 어려웠고 대중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깜짝 발표도 없었다.

재정보강, 추가경정예산 등 경기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단기부양을 위한 정책수단을 쉼없이 내놨지만 야권을 중심으로 '충분하지 않다'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탓에 그의 뒤로는 '존재감 부족한 장관'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 다녔다.

이 같은 유 부총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개각 발표 이후 새 부총리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가 지연되면서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에 불이 붙자 더욱 도드라졌다.

반면 이 같은 유 부총리의 면면이 오히려 장점이라는 평가도 있다.

시장의 주목을 끄는 '깜짝' 정책은 없었지만 달리 보면 유 부총리가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유일호표 정책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유 부총리가 부총리로서 보낸 1년은 온갖 악재로 꽉 채워진 탓에 경제수장으로서의 능력을 이전 부총리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유 부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서별관회의 대우조선해양 '밀실 지원' 논란, 가계부채 급증 등 최경환 부총리 당시 불거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꺼져가는 소비·투자를 살리기 위해 블랙프라이데이,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 정책을 쏟아부었지만 자동차 파업, 갤럭시노트7 단종 등 돌발변수에 이어 청탁금지법 시행까지 겹치면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대외변수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애초 가능성이 작게 점쳐졌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이 거짓말처럼 현실화됐고 최근에는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통상보복도 가시화하는 상황이다.

온갖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무색무취한 유 부총리의 성향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적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리한 정책 추진보다는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면서 대내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유 부총리의 '조용한 존재감'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8일 "유 부총리는 존재감이 크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인 것도 없다"라며 "자신이 직접 추진했던 의제가 없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남은 시간을 마무리하는데 오히려 적임자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roc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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