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독극물 성분(PHMG)이 첨가된 가습기 살균제를 허위 광고로 판매해 다수의 사상자를 낸 옥시(정식명 옥시레킷벤키지)와 관련 업체의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최고 징역 7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최창영 부장판사)는 6일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이 회사 연구소 전·현직 관계자 3명에게 징역 5~7년을, 옥시 제품 제조사인 한빛화학의 정모 대표에게 금고 4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2000년부터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PHMG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제품을 판매해 사망 73명 등 181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또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모방한 PB제품을 판매해 사망 28명 등 69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기소된 롯데마트, 홈플러스 두 회사의 전직 임직원 6명과 외국계 컨설팅사 간부, 제조사 대표 등에게 징역 5년 또는 금고 3~4년을 각각 언도했다. 그러나 주의의무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존 리 전 옥시 대표에게는 "검찰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살균제의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제품 라벨에 '인체 안전', '아기도 안심'이란 거짓 표시까지 했다"면서 "제품 라벨 표시만 믿고 살균제를 사용한 수백 명의 피해자들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는 참혹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피고인들의 양심 불량을 질타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중 상당수가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부모들은 본인 잘못이 아님에도 가족을 사상케 했다고 자책하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위로의 뜻을 밝혔다. 판결문만 보면 재판부는 상상을 뛰어넘는 피해자 규모와 사회적 충격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이 매우 심각하고 피고인들의 죄질도 나쁘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공판을 지켜본 피해자 가족들은 대부분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재판부가 결정한 형량이 피해자나 가족들의 울분을 흡족히 풀어주는 경우는 드물다. 또 재판부가 국민의 법감정을 완전히 외면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감성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흔들려도 안 될 것이다. 과도한 정상참작은 법관의 재량 범위를 넘어서 판결의 최우선 요건인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 다만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 대한 검찰 구형이 징역 20년이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사건에 대한 법원과 검찰의 인식 차이가 이렇게 크면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우리 국민한테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줬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23일 현재 이 사건의 누적 피해자가 사망 1천6명을 포함해 5천312명에 달한다. 정부는 이 가운데 695명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하고 258명을 보상지원 대상자로 분류했다. 뿌리까지 거슬러올라가면 이 사건이 얼마나 황당하고 참담한지 한눈에 드러난다. 원래 PHMG는 21년 전인 1996년 '카펫제조 항균제'라는 제한적 용도로 허가됐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농약 첨가물로 쓰이는 PHMG를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에 처음 쓴 것이 2000년이다. 카펫에만 쓰도록 허가된 독성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갔는데도 당국의 인체 유해성 검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폐섬유증 등 원인 모를 폐질환 환자가 속출했다.
보건당국이 조사에 착수한 것은 만 5년이 지난 2011년 5월이다. 당국은 그해 11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모를 폐질환'의 원인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작년 1월에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다. 임상적으로 피해자가 나오기 시작하고 10년이 지나서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셈이다. 정부가 피해자 규모를 제대로 파악한 것도 지난해의 일이다. 그동안 사망 피해자 가족들은 물론이고, 폐기능 손상 등으로 격심한 고통에 시달려온 생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얼마나 울분을 삼키며 마음속에 한을 쌓아 왔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과와 배경을 좀더 충실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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