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 만들면 뭣하나 자괴감 들면 오락영화 만들 수도"

입력 2017-01-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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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 만들면 뭣하나 자괴감 들면 오락영화 만들 수도"

박정우 감독 "'판도라' 시국에 묻혀 흥행 성적 아쉽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좀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평화로운 시국에 개봉되길 바랐죠."

영화 '판도라'는 박정우 감독의 바람과 달리 지난달 7일 개봉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최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시기였다. 개봉 이틀 뒤인 9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주 중에는 국회 청문회가, 주말에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박 감독은 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개봉 후 무대 인사를 다녔는데, 둘째 주부터는 극장에 사람이 없었다"면서 "다들 영화를 보는 대신 인터넷으로 시국 뉴스를 검색하고, TV로 청문회를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판도라'는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하면서 벌어지는 재난을 그린 블록버스터다. 박 감독이 4년 전에 쓴 시나리오지만, 요즘 시국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설정으로 주목받았다. 국정조작도 불사하는 '실세 총리'의 등장이나 정부 컨트롤타워의 부재 등이 시국과 맞닿아있는 설정으로 꼽힌다.

'판도라'의 지금까지 흥행 스코어는 약 450만 명. 손익분기점은 넘겼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시국을 등에 업고 흥행에 성공했는지, 아니면 시국에 묻혀 예상보다 주목받지 못했는지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박 감독은 후자의 해석에 무게를 실었다.

"'판도라' 개봉을 계기로 원전의 안전 문제를 비롯해 영화의 논리적, 과학적 허구 등에 관한 여러 논란이 촉발되길 바랐죠. 그러려면 최소 800만 명 정도는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흥행 면에서 좀 아쉽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하다 보니 영화가 묻힌 것 같아요. 물론 처음에는 이 영화가 과연 개봉은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런 시국이 터져서 수월하게 개봉한 측면도 있긴 합니다. 저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네요."


그래도 국민에게 원전의 안전 문제를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과는 거뒀다.

인터뷰 전날 새벽 경북 경주에서 규모 3.3의 지진이 발생하자, 인터넷에서는 '판도라'가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글들이 올라왔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위원회는 곧바로 "원전은 정상운전 중"이라고 밝히며 안심시켰다.

박 감독은 그동안 소문으로 무성하던 '외압'에 얽힌 뒷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에는 '실세 총리'가 '실세 비서실장'이었다"고 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모티브로 박 감독이 만들어낸 캐릭터다.

"촬영이 임박했을 때 투자사 쪽에서 비서실장만은 바꿔달라는 요청이 왔죠. 그 부분은 영화를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에 영향을 미칠 만큼 민감하고 파장이 큰 사안이라고 설명하더라고요. 어차피 '판도라'가 권력 비리 등을 다루는 영화는 아니었던 만큼 총리로 설정을 바꿨죠. 그때 '실세'의 위력을 느꼈습니다."


451만 명을 동원한 연가시(2012)에 이어 '판도라'까지 연이어 재난 영화를 만든 박 감독은 당분간 쉬면서 차기작을 구상할 계획이다.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데, 나 혼자 이렇게 재난 영화를 만들면 무엇하느냐는 자괴감이 들면 오락영화를 할 수도 있죠. 반대로 현실을 사는 것 자체가 재난이고, 또 다른 재난이 올 위험성이 있다면 그것을 알리기 위해 다시 재난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요. 한두 달 정도 쉬었다가 그 시점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찾아볼 겁니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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