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김밥에 계란 줄이고, 떡볶이서 빼…볶음밥·계란 프라이 안 팔아
취준생 애용 토스트집 문 닫아…"계란도 귀해진 처지 곤궁해보여" 탄식
(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전국을 휩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여파로 산란계(알 낳는 닭) 농가에 대한 살처분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폭등한 계란 탓에 정초부터 '혼밥족'이 더욱 우울해 하고 있다.
금란(金卵)이라 불릴 정도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계란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분식집이나 토스트 전문점, 중국 음식점 등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취업준비생이나 대학생들이 애용하는 식당에서 계란 사용을 줄이거나 아예 메뉴를 없애면서다.
지난 6일 점심시간 원룸촌이 몰려있는 청주시 상당구의 한 분식집. 원룸촌이다 보니 홀로 점심을 해결하는 이른바 혼밥족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제육 볶음밥이나 오므라이스, 오징어덮밥 등 식사 메뉴는 물론이고 떡볶이, 라면, 김밥 같은 분식류가 인기 메뉴라고 업주 정모(60)씨는 설명했다.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아내와 함께 장사해온 그는 최근 계란 가격 상승으로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일상이 됐다.
라면에 풀어 넣던 계란을 일부 뺐고 김밥의 지단 크기를 절반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정씨는 "예전에는 김밥 10줄 싸는데 들어가던 지단의 크기를 줄여서 요즘은 20줄 정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낙 계란 가격이 급등한 사정을 아는 터라 손님들이 이해는 해주지만 장사하는 입장에서 더 좋은 음식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은 있지만 수지가 맞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정씨는 하소연한다.
정씨는 "분식집에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이 혼자 사는 학생들이거나 자취하는 사람이 많아서 500원 올리는 것도 큰 부담이 되니 계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찾은 A(34)씨는 "계란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분식집에서 가격을 올려도 할 말은 없다"며 "계란뿐 아니라 물가가 전체적으로 오르는 상황이니 장사하는 사람들을 탓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긴한 데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취업을 준비하거나 자취하는 대학생들이 몰려있는 대학가 주변 토스트 가게와 분식집 풍속도도 바뀌었다.
충북대 인근에서 바쁜 아침 젊은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토스트 가게는 계란 가격이 치솟던 지난달 말 가게 문을 닫았다.
가게 문 앞에는 '계란 수급 문제로 인해 임대를 내주기로 했다'는 내용이 적힌 게시판을 내걸고 새 임차인을 찾았다.
이 가게 주인은 "토스트에는 계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 가격이 2배 이상 껑충 뛰어오르다 보니 수지를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다"며 "어쩔 수 없이 장사를 접었다"고 말했다.
이 대학가 인근에 자리를 잡은 한 한식 뷔페는 계란 후라이를 당분간 메뉴 목록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가게에서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달걀을 계속해서 공급해주는 게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업주는 설명했다.
청주대 인근 한 분식집에서는 지난달부터 떡볶이에 들어가던 계란을 아예 빼버렸다.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으로 계란 수급에 차질이 생겨 죄송하다는 안내문과 함께 돌려보내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혼자서 간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분식점이나 토스트 전문점을 애용했던 혼밥족들 사이에선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서러운데 그나마 단백질 보충에 절대적이었던 계란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게 된 현실이 서글프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대학생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야 커다란 영향이 없겠지만, 벌이가 변변치 않은 서민들 입장에서는 물가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큰 부담"이라며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계란조차 맘 놓고 먹을 수 없는 처지가 더욱 곤궁하게 느껴져 서글퍼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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