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리더십> 사재 털어 빈민구제 '진주 부자' 박헌경

입력 2017-01-11 07:07   수정 2017-01-11 08:31

<나눔의 리더십> 사재 털어 빈민구제 '진주 부자' 박헌경

기근 때 취로사업, 주민에 일자리 제공…소작인 빚도 탕감

(진주=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경남 진주의 '용호정원(龍湖庭園)'은 한 부자가 기근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자신의 사재를 털어 조성한 인공정원이다.

오늘날 정부에서 실직자나 빈민구제를 위해 시행하는 공공근로나 취로 사업과 같은 개념으로, 이미 90여 년 전에 한 개인이 공적 성격의 사업을 벌인 것이다. 이 부자는 소작인들의 채권장부를 불살라 빚까지 탕감해 줬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라를 빼앗긴 일제 치하에서 한 사람의 결단이 지역 주민들을 굶주림으로부터 구해냈다.


◇ '측은지심' 발동한 구휼사업으로 만든 정원

용호정원은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진주-산청 국도 3호선 변 조비마을에 있다.






이 정원은 1928년 밀양 박씨 문중의 박헌경(朴憲慶 1872~1937) 참봉(參奉)이 만들었다.

박 참봉은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꾀하다 자결한 충정공(忠貞公) 박심문(朴審問)의 18대손이다.

당시 진주 지역에는 수년간 거듭된 수해와 가뭄에 따른 기근으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무렵 조비마을도 많은 비로 개천 둑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고, 40여 가구 중 24가구가 물에 떠내려가고 4명은 물에 빠져 숨지는 참사가 났다.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조비마을뿐 아니라 인근 마을 주민들도 식량이 없어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박 참봉은 굶주리는 주민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구휼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조비마을 앞 논과 밭에 공원 조성공사를 벌여 일자리를 만들고 참여하는 주민들에게 하루 일당으로 돈과 쌀을 줬다.






박 참봉의 후손 박우희(82·서예가) 씨는 "할아버지는 흙을 파고 지게에 담아 옮기도록 했는데, 흙 담긴 지게를 두 번 이상 짊어진 사람들에게 일당을 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일당이 얼마인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가족 3∼4명이 하루나 이틀 밥을 지어 먹을 만 했다는 말이 전해 온다"고 말했다.

용호정원 조성공사에는 하루 수십 명의 주민이 참여했고 마을 주민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일당을 받으려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박 씨는 덧붙였다.

조성공사가 2년여 만에 완공된 사실을 고려하면 참여한 연인원이 수만 명에 달하고, 풀린 돈도 가히 기하학적 규모로 추정된다.

이 공사는 1960∼70년대 취로 사업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실직자 구제를 위한 공공근로 사업을 연상시킨다.

박 참봉의 나눔 실천에 감동한 사람들은 감사 표시로 용호정원 인근에 공덕비 7기를 세웠다.






'공의 높은 덕은 자비와 사랑으로 공평하고 균등했네, 힘을 다하시어 조상을 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황금을 털어내 가난을 구휼했네, 흉년 배고픈 시절에 고달픈 사람들을 구제해 백성을 편케 했네…'

부(富)를 과시가 아닌 나눔의 수단으로 사용한 박 참봉을 주민들이 이렇게 칭송했다.


◇ 박 참봉은 재산가…"곡물 사업 벌여 현금·토지 많았다"

박 참봉은 사재로 취로 사업을 벌일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사업가였다.

후손 박 씨는 "할아버지는 대대로 이어온 양반 집안으로 전답을 물려받았고 이곳에서 재배한 곡물을 파는 사업을 벌여 돈을 많이 벌었다"고 소개했다.

박 참봉은 조비마을 전답 대부분을 소유했으며 인근 진주 이현동 일부 땅까지 소유한 대지주였다.

그는 재배한 곡물을 인근 전남·전북 등지까지 나가 팔았고 이 덕분에 현금을 많이 보유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전 재산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할 수 없고 '만석꾼'으로 수만금을 가진 재산가란 말만 집안에 전해 온다고 박 씨는 밝혔다.

할아버지가 용호정원을 조성하기 전인 1927년 용산리 뒷산에 '용산사'란 절을 세웠다고 박 씨는 귀띔했다.

그때도 가뭄 등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주민들을 돕기 위해 절을 지었는데 기근이 계속되자 용호정원도 건설했다는 것이다.

그가 공사를 벌여 일자리를 만들고 돈과 식량을 나눠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박 참봉은 이재민들에게 땅을 나눠 줘 집을 짓게 하고 소작인들로부터 받은 토지세를 돌려줬다.

특히 부채를 탕감해 주려고 채권장부를 불태워 없앤 것으로 유명하다.

박 씨는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이웃 주민들에게 많은 곡식과 돈을 빌려줬는데 이를 적은 게 채권장부였다"고 했다.

이렇듯 나눔을 실천한 박 참봉은 효행으로 성균관으로부터 포장(褒狀)을 받기도 했다.

박 참봉 할머니인 안동 장씨가 봄과 가을에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쌀 한 되씩을 나누어 준 사실도 전해 온다.

박 참봉이 어린 시절 할머니의 나눔 실천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이 나눔 정신이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 중국 명산 무산십이봉 본떠 만든 '절경'

박 참봉은 중국 쓰촨(四川)성 동쪽 명산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을 본떠 용호정원을 만들었다. 총면적이 4천679㎡에 달한다.

당시 용호정(팔각정)을 먼저 만든 뒤 연지(蓮池)를 팠고 파낸 흙으로 12개의 가산(假山)과 둑을 쌓았다.







용호정(龍湖亭) 지붕에는 일제 탄압을 의식하지 않고 과감하게 태극문양을 새긴 기와를 얹었다.

후손 박 씨는 "당시 할아버지는 구휼과 함께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용호정원을 지었다고 전해 온다"라며 "평생을 남을 위해 사신 분이다"고 말했다.

용호정원은 1990년 12월 20일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176호'로 지정됐다.

이곳은 또 지역 시인 묵객들의 시회(詩會) 연회장으로 이용됐다.

시인 묵객들이 무산십이봉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시문이 12기 비석과 사각 석주에 새겨졌다.







shch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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