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출신 조현주·염승숙씨…남편은 희곡·아내는 평론 당선 겹경사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조현주씨 되시죠? 경향신문사입니다. 이번에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서 당선되셨습니다."
"네? 전화 잘못 거셨어요."
조현주(39)씨는 최근 이런 내용의 통화를 하고선 무신경하게 전화를 끊었다. 응모하지도 않은 부문의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니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으로 여겨져서다. '국어국문학과 출신 맞춤형 보이스피싱인가?' 하고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뿐이었다.
더구나 조씨는 며칠 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서 당선됐다는 연락을 받은 터였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던 이 전화가 문단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겹경사를 알리는 축전임을 깨닫게 된 건 몇 시간 뒤 아내인 염승숙(35)씨와 통화를 하면서다.
"혹시 평론 응모했어?"
"아, 맞다. 그거 냈어. 어떻게 알았어?"
"아차, 잠깐만 끊어봐, 끊어봐."
조씨는 얼른 전화를 끊고 그 '보이스피싱'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내가 자신의 작품을 제 이름으로 응모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혼자 되기도 힘든 신춘문예에 부부가 나란히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특히 이들 부부는 동국대 동문이기도 하다. 전공은 조씨가 국어국문, 염씨가 문예창작으로 다르지만, 이들은 대학에서 이른바 'CC(캠퍼스 커플)'로 만난 사이다. 무려 9년의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했다. 이번에는 문단 동료가 된 셈이다.
조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신춘문예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미 등단한 소설가인 염씨는 남편 이름으로 평론 부문에서까지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염씨는 9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학부생 때 등단을 해서 동료 학생들이 작가의 작품이라고 '합평(合評·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함)'을 해주지 않아 아쉽고 내가 제대로 쓰는지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며 "그때마다 남편이 글을 읽고 평가해주는 역할을 해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공교롭게 조씨와 염씨 모두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부문에서 당선된 것도 이들 부부의 기쁨을 더하는 부분이다.
대학 때부터 소설가를 꿈꿨던 남편 조씨는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력이 없어 습작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러다 2년 전 직장을 옮기느라 잠시 쉬던 기간, 자신과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창작 의욕을 다시 내비쳤다는 것이 아내 염씨의 설명이다.
연극에도 관심이 많던 조씨는 어느 정도는 재미삼아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작품을 신춘문예에 투고해 최종심까지 올라가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창작에 몰두해 당선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염씨는 2005년 '현대문학'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해 단편집 3권과 장편소설 1권을 상자(上梓·책 따위를 출판하기 위하여 인쇄에 붙임) 했다. 그는 이번 신춘문예 당선으로 평론가까지 겸업하게 됐다.
남편이 직장에 다니면서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창작열을 불태우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은 염씨는 그 옆에서 평론을 썼다.
염씨는 "원래는 투고할 생각이 없었는데 문득 운이 좋아서 심사평에 한 줄이라도 언급되면 앞으로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까지 마감하지 않은 신문사가 한곳 있어서 마지막 날 우편으로 응모했다"고 말했다.
이미 소설가로 이름이 알려진 염씨가 남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응모한 것이 '보이스피싱' 오해의 원인이 됐다. 덕분에 같은 동네 사는 문단 선배와의 조촐한 당선 축하연도 두 번이나 열게 됐다고 염씨는 귀띔했다.
염씨의 대학원 지도교수이자 조씨의 은사인 장영우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는 "염승숙씨는 12년간 소설을 쓰다가 이번에 평론으로 등단해 깜짝 놀랐다"며 "소설을 창작하다 평론을 겸업한 사례는 내 기억으로는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다"고 촌평했다.
장 교수는 또 "조현주씨도 소설 열심히 썼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글을 안 쓰게 됐나 아쉽게 생각했는데 혼자 칼을 갈고 있었구나 싶어 기특하다"고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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