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딱 그만큼의 무게…문성해 새 시집

입력 2017-01-09 14:19  

일상, 딱 그만큼의 무게…문성해 새 시집

신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문성해(54) 시인은 최근 펴낸 네 번째 시집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문학동네)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담백한 언어로 기록한다. 3부로 나눠 실은 60편의 시에는 의식주 가운데서도 목숨과 직결되는 먹거리, 고구마·피망·열무김치·육개장 같은 것들이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일상이 소중하다고 해서 곧 엄숙하고 신성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과장하거나 힘주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비유가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생활의 무게를 더도 덜도 없이, 있는 그대로 싣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평생 살림"이었고 "대책 없이 땅만 파내려가던 붉은 옹고집"을 간직한 고구마를 쪄먹을 때 조그만 예의란 그저 "가슴을 퍽퍽 치고 먹어야 하는" 것이다.

"새벽에 깨어 찐 고구마를 먹으며 생각한다// 이 빨갛고 뾰족한 끝이 먼 어둠을 뚫고 횡단한 드릴이었다고/ 그 끝에 그만이 켤 수 있는 오 촉의 등이 있다고/ 이 팍팍하고 하얀 살이/ 검은 흙을 밀어내며 일군 누군가의 평생 살림이었다고" ('조그만 예의' 부분)

묵언수행하는 수녀도 일상은 있을 터다. 시인은 봉쇄수녀원 문 앞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며 머릿수건 속 머리는 긴 머리인지 커트인지, 목욕탕에선 과연 자신과 같을지 상상해본다. 무 한 뿌리가 되어 수녀원 밭에 머물고 싶은 이유는 그네들이 언니나 이모인 듯 기대고 싶어서다.

"싸락눈이 맵차게 내린 어느 날/ 걷어붙인 새파란 손목들에게 썩둑썩둑 썰려서/ 겨우내 기도처럼 익어갈 것입니다/ 소금물이 살강살강 배어드는/ 깊은 항아리 속에서" ('수녀원엔 동치미가 맛있습니다' 부분)




종소리에서 동그란 도넛을 떠올리고 냉장고에 밴 생일 케이크 냄새와 생선 비린내에서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시인이지만 밥에 앞서는 건 사람이다. 그래서 눈 오는 날 아침, 서리 내려앉은 밥과 반찬을 비비는 거지를 떠올리면 "기특하게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거지의 입맛') 표제작은 '밥에게 밀린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밥을 향한 애증의 표현으로 읽힌다.

"결국에는 보리밥 같은 것이나 앞에 두고/ 정말 밥 먹으러 나온 사람들처럼/ 묵묵히 입속으로 밥을 밀어넣을 때/ 나는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다/ (…)/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너와 나 사이 더운 밥 냄새가 후광처럼 드리워져야/ 왜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가/ 으깨지고 바숴진 음식 냄새가 공중에서 섞여야/ 그제야 후끈 달아오르는가"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부분)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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