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투병보다 구위 저하가 은퇴 결정 이유"
"좋은 코치의 조건은 좋은 사람…언제든 연락할 사람으로"
(대구=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정현욱(39) 삼성 라이온즈 코치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고 했다.
2014년 7월, 그는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 뒤 종합검진을 받은 정현욱은 전혀 예상치 못한 위암 선고를 받았다.
그는 외부에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고 암세포와 싸웠다.
9일 대구에서 만난 정현욱 코치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 준 LG 트윈스에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아프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정현욱 주위에 사람이 모였다.
"저는 숨으려고만 했어요. 그런데 LG 코칭스태프, 트레이너분들이 저를 찾아왔죠.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격려해 주신 분도 많고요."
숨을 고른 그는 "그 덕에 내가 살았고, 마운드에도 섰다. 이젠 지도자로 새 출발도 할 수 있다"며 웃었다.
사실 LG는 정현욱에게 "현역으로 더 뛸 수 있다. 선수로 계약하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정현욱은 "금전적인 부분만 생각하면 현역으로 더 뛰는 게 유리하지만, 창피한 투수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마운드가 그립긴 하지만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 "시즌 중간에 도망갔을지도 몰라요" = 정현욱은 자존심이 강한 선수였다.
은퇴를 만류하는 LG에 그는 "연봉 값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LG도 더는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정현욱은 2012년 11월 LG와 4년간 최대 총액 28억6천만원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했다.
그는 LG 이적 첫해인 2013년 2승 5패 2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점 3.78을 기록하며 LG가 오랜 암흑기를 지우고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데 힘을 보탰다.
김기태 당시 LG 코치는 "정현욱이 성적 이상의 역할을 했다. 투수진의 리더였다"고 말했다.
정현욱은 "정말 짜릿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정현욱은 2014년 7월 8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이 끝난 뒤 오래 1군 마운드를 비웠다.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 뒤 종합검진을 받았고, 암세포가 발견됐다.
긴 재활을 견딘 정현욱은 올해 3월 26일 시범경기 잠실 두산전에서 1군 마운드에 다시 올랐고, 4월 15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647일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라 1천43일 만에 세이브를 올렸다.
정현욱의 재기는 프로야구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LG 후배들도 정현욱을 지지했다. 양상문 LG 감독은 "2017년에 정현욱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현욱은 "내 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펜 투수들은 상황에 따라 여러 차례 몸을 풀고 등판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내 몸이 그걸 견디지 못하더라"라고 곱씹으며 "사실 2016년 시즌에 돌입하기 전에 'LG와 4년 계약을 채우고 은퇴해야겠다. 마지막 1년 동안 모든 힘을 쏟자'라고 다짐했다. 지난해 후반기에 구속이 시속 147㎞까지 오를 때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심한 대로 은퇴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LG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그런데 시즌 중에 또 내가 부진하면 시즌 중에 나 스스로 도망칠 것 같았다"며 "LG를 위해서도 유니폼을 벗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LG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 "젊은 투수, 기회를 잡아라" = 정현욱은 프로생활을 시작한 삼성에서 지도자로 새 출발 한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불펜 투수였던 그는 올해 삼성 불펜 코치를 맡는다.
선발 뒤를 잇는 투수들의 몸 상태를 점검하는 게 주 임무다.
정현욱 코치는 "선수들이 몸뿐이 아닌, 머리와 가슴으로도 준비했으면 한다. 필승조 투수들이 추격조보다 잘 던지는 이유 중 하나는 '등판 시기를 알고 준비하는 것'이다"라며 "아무래도 추격조 등판 상황은 불규칙하다.
반면 필승조들은 등판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추격조로 야구 인생을 끝내고 싶은 선수는 없다. 선수 자신이 더그아웃이나 불펜에 앉아 있어도 '내가 등판하면 이런 볼 배합을 하고, 이런 공을 던지겠다'고 마음으로 준비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 코치는 더 강한 어조로 "기회를 주는 건 지도자의 몫이지만, 기회를 잡는 건 선수의 몫이다"라고 했다.
정 코치는 실패와 성공을 모두 경험했다.
1996년 2차 3라운드 전체 21순위로 삼성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8년 처음 1군 무대를 밟았고, 패전 처리로 시작해 2003년부터 삼성 불펜진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정 코치는 "나도 많은 기회를 받았고, 처음에는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며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들의 마음도 잘 알고, 기회를 잡았을 때의 짜릿함도 잘 안다. 이런 경험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좋은 코치의 조건은, 좋은 사람" = 정현욱은 삼성 시절, 투수진을 이끄는 클럽하우스 리더였다.
그가 LG로 떠날 때 후배 투수들은 "구심점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정 코치의 삼성 복귀를 더 반기는 이유기도 하다.
정 코치는 "투수진 명단을 보니 권오준, 윤성환, 심창민, 김기태 정도를 빼고는 안면이 없더라. 얼굴부터 익혀야 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정 코치와 현역 생활을 함께하지 않은 젊은 투수들도 그의 코치 부임을 반긴다.
그는 "내가 삼성에서 뛸 때 베테랑이 솔선수범하고, 후배들은 선배의 좋은 점만 배우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투수 조장인 내가 전력 질주를 하면 윤성환, 오승환 등 중고참들도 열심히 뛰고 젊은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그런 자세를 배웠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정 코치는 "그런 분위기는 여전히 삼성에 남아 있을 것"이라며 "좋은 투수가 많이 떠나고, 지난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삼성 투수진은 반등할 수 있다"고 후배들을 격려했다.
그의 단기 목표는 "김한수 감독님, 김상진 코치님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해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투수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 목표도 있다.
정 코치는 "시속 150㎞를 던지는 젊은 투수들이 많지 않다. 150㎞를 던질 몸을 만들어야 150㎞를 던질 수 있다. 나도 예전에는 구속이 빠르지 않았는데, 몸을 키우고 나니 구속이 올라왔다"며 "다양한 유형의 투수가 필요하지만, 빠른 공으로 승부하는 정통파 투수가 더더욱 필요하다. 그런 투수가 탄생하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현역 시절 정 코치는 시속 150㎞대 빠른 직구와 120㎞대 커브를 섞는 '정통파 투수'였다. 덩치 크고, 시원하게 빠른 공을 던지는 그에게 팬들은 환호했다.
정 코치는 "내가 느꼈던 짜릿함을 언제든 후배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며 "좋은 사람이 좋은 코치가 된다. 언제든 얘기하고 싶은 좋은 코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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