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일대일로' 점검…"비단길이 진흙탕 되고 있다"

입력 2017-01-10 15:20   수정 2017-01-10 16:19

시진핑 '일대일로' 점검…"비단길이 진흙탕 되고 있다"

사업위험 심사 능력도 인력도 태부족…상환 못받으면 탕감가도 또 빌려줘

해외 사업현장은 뇌물·횡령 횡행 기회…환경파괴·집단이주에 현지 주민 저항도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중국이 지난 2013~2015년 사이 중국개발은행(CDB)을 비롯한 국책은행들을 통해 정책적으로 개발도상국들에 제공한 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10대 수혜국 가운데 6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채무불이행에 빠질 위험도가 높은 나라에 속했다.

지난해 10월 파이낸셜 타임스의 분석에 따르면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 아프리카 국가들에 350억 달러의 개발원조를 약속했지만,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언저리에 머물면서 석유 수출을 담보로 대출받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채무 상환 능력이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은 시 주석의 야심에 찬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이 출범한 해다. '신실크로드'라고도 불리는 일대일로는 중국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와 이란을 거쳐 지중해 연안으로 이어진 고대 무역로를 따라 21세기 경제협력 지대를 만들고 이와 함께 뱃길로도 중국을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와 잇는 해양판 실크로드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시 주석의 야심대로 완성된다면 중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화가 출현하는 셈이지만, 그 "비단길이 점점 진흙탕이 되고 있다"고 미국외교정책협회(AFPC)의 중국 담당 선임연구원 조슈아 아이젠먼이 경고했다. 지난해 파이낸셜 타임스의 분석 결과와 상통하는 진단이다.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조교수이기도 한 아이젠먼은 9일(현지시간) 포린 폴리시 기고문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이 현지에서 현실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점검하면서 "성공한다면 중국이 의문의 여지없는 유라시아 패권국이 되겠지만, 실패하면 수백 수천억 달러를 낭비한 채 빚더미 이웃 국가들만 양산하는, 한마디로 흰 코끼리(비용과 수고만 들인 쓸모없는 것)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이젠먼에 따르면, 일대일로 사업은 약 60개 개발도상국에서 900개에 이르는 사회간접자본 건설비로 총 1조 달러(1천200조 원)의 양여성 자금을 투자하는 것이다. 대상 국가와 사업 추진 합의가 이뤄지면 그 사업을 진행할 중국 국영 기업의 계좌로 사업비가 들어가고, 이 기업은 그 돈으로 가능하면 중국산 자재를 사서 건설 공사를 하게 된다. 중국 국내 경제 둔화와 과잉 생산 능력 문제의 해결책이기도 한 셈이다.

문제는 중국 국영기업들이 현지의 정치적, 재정적 위험평가나 시장조사를 아예 또는 거의 하지 않다는 데 있다. 더구나 최근엔 중국 국내 경제의 둔화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따른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대일로 사업 승인이 더욱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업 대상 나라 중엔 정치·경제 불안이 세계 최악인 나라들도 있다. 이슬람 문화권이 다수라는 종교 변수 위험도 있다. 규제 제도와 언어, 문화 환경이 상이한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수십 개 사업의 타당성, 수익성, 위험도 등을 심사할 능력과 인력이 태부족인 상황이다.

이미 스리랑카, 짐바브웨 같은 나라들에 빌려준 돈 수십억 달러는 떼일 위험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채무를 못 갚는 나라들에 대해 중국은 빚을 탕감해주고 새로 빌려주는 일이 잦다. 이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낳아, 많은 나라 지도자들이 빌릴 수 있는 한 많은 돈을 빌리려 하고 있다. 중국이 3조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지만 빚을 무한정 탕감해줄 능력은 없다.

또 하나 문제는 부정부패. 국내에선 시진핑의 반부패 칼날이 서슬 퍼렇지만, 일대일로 사업은 중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서로 손을 잡거나 사업 대상국 측과 짜고 자금 낭비, 사기, 횡령을 벌일 기회가 크게 열어 놓은 셈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5년 부패지수에 따르면 중국도 83위로 그리 좋지 않은 터에 투르크메니스탄(154위), 키르기스스탄(123), 캄보디아(150), 미얀마(147위) 같은 나라들에서 수백여 건의 사업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업 자금의 현금은 대부분 중국에 머물지만, 철, 콘크리트, 목재 등의 막대한 자재와 장비는 사업현장에서 빼돌리기 등과 같은 각종 불법부정 행위의 좋은 기회가 된다. 대출 승인권을 쥔 관리들에 대한 중개료 명목의 상납과 뇌물, 주문 위조, 저질 건축 자재 등의 문제는 중국 내에서도 문제이지만 사업 대상 국가들에선 더 심각해진다.

날림 공사, 안전기준 무시, 폐자재나 저질 자재 사용, 환경파괴 같은 중국 기업의 사업 관행은 이미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에서 정부의 불만과 주민들의 집단시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의 경우 각 정파와 군부, 지역사회 유지들 사이의 이권 다툼 때문에 중국과 파키스탄 간 경제회랑(CPES) 사업 다수가 지연되고 있다. 지난달 파키스탄을 방문한 중국 공산당 고위 인사가 이례적으로 공개연설에서 파키스탄 정당들에 "서로 이견을 해소해 CPES가 성공하도록 협력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동남아 지역에선 중국이 추진하는 사업들로 인한 환경파괴와 마을 집단이주 등의 문제 때문에 지역민으로부터 저항이 거센 곳도 많다.

중국 내부적으로도 경제적, 정치적 위험 요인이 크다. 중국 정부가 사업 위험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에 집중 투자하려 하지만, 민간투자자들은 자금 유출에 대한 정부의 단속을 피해 다양한 우회로를 통해 미국 부동산 시장 등 안전 투자처로 도망가고 있다.

이런 도전에 직면한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 사업의 성패에 대해 아이젠먼 교수는 명확한 전망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만 말했다.

y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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