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美국무, 윤병세와 통화…日 외무상과도 통화 가능성
정부간 갈등 봉합해도 대선국면 맞물려 위안부합의 시험대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위안부 소녀상 문제에 대해 미국이 사실상 중재 행보에 나섬으로써 한일간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1일 밤 윤병세 외교장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한일간 위안부 합의를 언급한 것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의 소녀상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갈등을 중재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케리 장관은 통화에서 "한국 정부는 그동안 위안부 합의를 성실히 이행해 왔으며 최근 한일간에 조성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제된 대응을 하고 있는 데 대해 평가한다"면서 "미국은 앞으로도 한일관계 개선, 한미일 협력 증진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한 한미일 공조를 염두에 두고 한일간의 위안부 합의 타결을 적극 독려했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번 케리 장관의 행보 역시 소녀상 갈등으로 위안부 합의가 위기에 처하자 중재 역할을 자임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지난 6일 일본 정부가 주한대사 일시귀국 등의 조치를 발표하기 전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소녀상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조치 계획에 대해 상황 악화 자제를 주문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케리 장관은 윤 장관에 이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과도 통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11일 케리 장관이 한국 외교장관, 일본 외무상과 각각 또는 3자간 전화 회담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고, 케리 장관과 윤 장관의 통화는 이 보도가 나온 직후인 같은 날 밤에 이뤄졌다.
케리 장관은 기시다 외무상과 통화를 할 경우 위안부 합의의 성실한 이행과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일본측의 확전 자제를 주문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정부는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차기 행정부에 바통을 넘겨주기 전까지 이 같은 물밑 중재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저자세 외교'라는 국내 여론의 거센 질타에도 절제된 반응으로 상황 타개를 모색해왔다.
외교부는 외교공관 보호 등을 거론하며 부산 소녀상의 이전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언급, 일본측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이는 한편으로 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강조하며 일본 측에 상황을 추가로 악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특히 지난 9일 일시귀국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일본대사가 언제 귀임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나가미네 대사의 귀임이 현 사태의 새로운 국면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늠자로 보기 때문이다.
일본도 아베 총리까지 나서 한국 여론을 자극하던 데서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일본 역시 위안부 합의의 파기를 원하지는 않는 만큼 나가미네 대사를 조만간 귀임시키면서 한일 간 갈등이 다소 조정국면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제기된다.
그러나 한일 정부가 갈등을 봉합하더라도 위안부 합의의 운명은 이미 더욱 험난한 환경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많다.
소녀상 갈등에 반발한 일본의 일방적 조치로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내 여론은 더욱 악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 따라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위안부 합의의 파기 및 재협상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위안부 합의는 차기 대선의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lkw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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