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왕이 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더 킹'

입력 2017-01-12 20:17  

개천에서 왕이 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더 킹'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 '더 킹'은 권력을 좇던 한 남자의 흥망성쇠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평범한 검사 박태수(조인성)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실세 검사 한강식(정우성)을 만나 권력을 누리지만, 스스로 왕이 되려 했다가 몰락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는 "나쁜 짓을 하면 천벌을 받고 지옥 간다"는 태수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날마다 싸움이나 일삼던 고등학생 태수는 아버지가 검사에게 뺨을 맞는 모습을 본 뒤 검사가 되길 꿈꾼다.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태수가 검사가 되기까지 과정은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롤러스케이트장 등 백색소음이 있는 곳에서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태수는 가뿐히 서울대 법학과에 합격한다. 여자친구 때문에 얼떨결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군대에 끌려간 뒤에는 고시공부를 해 사법고시에 단번에 붙는다. 이후 준재벌의 딸이자 미모의 아나운서를 아내로 맞는다. 여기까지는 '개천에서 용이 된' 검사들의 일반적인 수순이다.

태수는 그러나 반복되는 야근, 박봉 등 일반 샐러리맨과 다름없는 검사 생활에 염증을 느낀다. 그런 그에게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온다. 든든한 뒷배를 가진 여고생 성폭행범을 풀어주는 대가로 한강식의 라인을 타게 된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대한민국의 1%만 누릴 수 있는 권력의 세계에 발을 담근다.


영화는 태수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태수가 화자가 돼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설명한다. 전두환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이어지는 시대적 배경은 실제 뉴스 화면 등을 삽입해 보여준다. 이 때문에 '더 킹'은 상업영화이면서도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강하다.

한재림 감독은 "태수를 통해서 욕망의 세계, 권력의 세계를 정확하게 보기를 바랐다"면서 일부러 다큐적인 방식을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감독이 묘사하는 권력 내부의 세계는 이렇다. 그곳은 서열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한번 서열이 정해지면 충성과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잠시, '라인'만 잘 타면 인생은 180도 바뀐다. 군 경비구역에서 선탠할 수도 있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도로를 지날 수도 있다.

평검사 태수가 서울 야경이 훤히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펜트하우스로 올라가는 장면은 그가 실세 권력에 합류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펜트하우스에서 태수와 한강식이 재벌 회장과 언론인, 여자들과 한데 어울려 노는 모습은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고급 요정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감독은 권력의 민낯을 보여주는 도구로 한강식이라는 인물을 내세운다. "내가 곧 역사"라고 떠벌리는 한강식은 '사건 파일'들을 무기로 재벌들에게 안하무인격 권력을 휘두른다. 겉으로는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정권 교체기마다 무당을 찾아가 점을 보거나 굿을 하며 자기가 원하는 후보가 정권을 잡기를 기원하는 인물이다.

주변 인물로는 한강식의 오른팔인 부하 검사 양동철(배성우)과 태수의 뒤를 봐주는 조폭 들개파의 2인자 두일(류준열)이 등장한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병폐를 심각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밝고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가볍게 짚고 넘어간다. 풍자와 해학이 있는 마당극처럼 관객들이 유쾌하게 영화를 즐기도록 하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풍자라고 하기에는 메시지가 너무 직접적이고, '내부자들'과 같은 묵직한 여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주인공 태수에게도 온전히 감정이입을 하기 어렵다. 이는 조인성의 연기가 부족해서라기보다 태수라는 인물 자체가 갖는 설득력이 약한 탓이다.

태수는 권력을 향해 달려가다 불나방처럼 불에 타버리지만, 그에게 동정이나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게 가장 가혹한 벌은 검사 옷을 벗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라는 설 자리가 있고, 준재벌 장인이라는 기댈 구석이 있다. 그 때문에 그가 준비한 마지막 반격도 의외로 쉽게 이뤄져 통쾌함이 덜하다.

태수를 돕는 조폭 친구의 이야기도 주요 축이지만,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않고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는 탓에 여성을 부속품처럼 그린다. 조인성의 아내 역에 김아중 같은 배우가 필요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정도다.

그래도 조인성, 정우성이라는 두 배우가 한 프레임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하다. 정우성이 노래방 마이크를 잡고 그룹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부르거나 단체 율동을 하는 보기 드문 모습도 볼 수 있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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