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서 예비통과…"초범이고 치료받을 정도 아니면 벌금·사회봉사"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가정폭력 처벌 수위를 낮추는 법안이 러시아 의회에서 예비 통과돼 여성단체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BBC방송이 13일 보도했다.
일명 '때리기 법'(slapping law)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가정폭력이 발생했더라도 가해자가 초범이고, 피해자의 부상 정도가 '병원 치료를 필요로 하거나 회사에 병가를 내야 할' 수준이 아니라면 실형 대신 벌금이나 사회봉사 명령으로 대신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같은 일이 재발하면 기소돼 실형을 살 수 있다.
이 법안은 지난 12일(현지시각) 국가두마(하원에 해당)에서 표결에 부쳐졌으며 참석 의원 중 368명이 찬성해 통과됐다. 반대와 기권은 1표씩 나왔다.
그러나 이 법인이 최종적으로 채택되려면 상원 승인 등을 절차를 추가로 밟아야 한다.
극우 성향의 여성 정치인인 옐레나 미줄리나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남편과 아내는 물론 자녀들에게도 적용된다.
미줄리나 의원은 "한 대 때렸다고 범죄자 꼬리표를 달고 수감돼야 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며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미줄리나 의원은 또 모스크바타임스에 "러시아 전통 가족문화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부모의 힘에 대한 권위에 기반한다"며 "이 법은 이런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에 러시아 여성단체들은 공분하며 법안 가결은 러시아의 고질적 가정폭력 문제를 더욱 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의회 밖에선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가정폭력 피해 사례에 관한 전단을 배포했다.
성폭력 관련 단체인 '자매들'의 올가 유르코바 상임이사는 이 법안에 대해 "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더욱 풀어주는 셈"이라며 "이미 많은 여성이 피해 사실을 밖으로 꺼내지 않고 참는데 이런 상황이 더욱 만연해질 것"이라고 규탄했다.
노바야 가제타 신문의 한 기자도 "몸에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고 해도 가정폭력은 이미 피해자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든다"며 반대했다.
러시아의 가정폭력 실태에 관한 공식 자료는 없으나 60만 명가량이 신체 또는 언어 학대를 당하고 있으며 배우자의 폭력으로 한해 1만4천명이 숨지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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