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들 십시일반 도움…이경애 시인 '견고한 새벽' 펴내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형편이 어려워 시집을 못 냈던 한 무명시인을 위해 블로거들이 힘을 모아 시집을 펴내 눈길을 끈다.
14일 지역 문화계에 따르면 곡성 출신으로 춘천에 사는 이경애(56·여)씨가 블로그 이웃들의 도움으로 첫 시집 '견고한 새벽'(파피루스북)을 펴냈다.
1960년 곡성에서 태어난 시인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갔고,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떠난 뒤 줄곧 고향을 떠나 있었다.
서울의 한 대학을 중퇴한 뒤 두 아이의 엄마로 가정을 꾸려가던 이 씨는 2013년 53세의 나이에 늦깎이로 현대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2013년부터 '달숨'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이 씨는 매일 시 한 편을 블로그에 올렸다.
처음에는 별로 반응이 없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블로그 이웃들이 그녀의 시를 읽기 시작했다.
감성적인 시어로 인기를 끌었지만, 생활 형편 때문에 시집을 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은 블로거들은 그녀를 위해 시집을 내기로하고 의기투합했다.
해남에 사는 한 블로거는 자신이 만든 목각 작품을 경매에 내놨고, 다기를 만드는 이는 찻잔을 선뜻 내놨다.
다른 블로거들도 시집을 몇 권씩 예약 구매하는 것으로 힘을 보탰다.
결국, 300여편의 시 가운데 100여편이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내 일생의 작업이라야 / 아이 둘 낳은 것 / 밥하고 빨래한 것.../ 그리고 한 뼘의 그리움과 / 한 줌의 쓸쓸함을 쥐고 / 치자분 하나 살려낸 것, 봄날 다 보내고 .../그 깊지도 않고 평이한 노동들이 / 이렇게 일생 다 젖는 일이었을까' ('장마' 중 일부)
'그림자도 없는 새벽 / 외등을 지고 앉아 폐지를 고르던 노파가 / 느릅열매 같은 혀를 내밀고 눈을 받아먹습니다 / 나를 보고 민망한지 빙그레 웃습니다' ('견고한 새벽'중 일부)
이 씨의 시어는 매우 평범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일상에서 건진 시어들에는, 잔잔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넉넉한 마음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시집 발간에 참여한 한 블로거는 "이경애의 시를 읽으면 영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져 갑자기 눈물이 왈칵 맺히고 가슴에 오래 남는다"며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 곁에 두고 읽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생활에 쫓겨 시집을 낼 엄두조차 못 냈는데 블로그 이웃들이 시집 발간을 제안을 해와 깜짝 놀랐고 눈물이 났다"며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지만, 따뜻한 마음에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학력도 짧고 시를 전공하지 않아 논리는 없지만 시는 동감(同感)이라고 생각한다"며 "단 한 사람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고 함께 느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천세진 시인은 "이경애 시인의 그리움은 낭만과 여린 감상으로는 잴 수 없는 생의 고락에서 탄생한 것이어서 그의 시에 대한 공감은 견고한 아픔을 동반한다"고 평했다.
minu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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