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조사때 10여명 일관된 진술…軍 해명대로 "기총소사 없었다" 결론
재수사 나선 검찰도 전일빌딩 현장조사 진행 안 해 '직접 증거' 놓친 듯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지난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5·18 당시 광주에 투입한 군 헬기의 공중사격 가능성이 유력하게 추정된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기관총에 의한 사격(기총) 여부까지는 판명하지 못했지만, 헬기에서 최소한 소총 사격을 했다는 유력한 직접 증거가 37년 만에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것이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사격을 가했다'는 의미로 해석돼 '폭도의 위협에 대한 자위권 발동'이라는 신군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다.
이 때문에 5·18 단체들은 지난 1995년 검찰의 5·18 수사 당시부터 '헬기 기총사격' 사실을 밝혀달라고 촉구하며 수많은 증언을 했다.
그러나 과거 두 차례에 걸친 검찰 조사에서 헬기 사격 증언은 결국 '사실무근'으로 허무하게 결론 났다.
검찰이 당시에 수많은 시민의 목격 증언을 토대로 수사만 제대로 했더라면 20여년 전 이미 밝혀졌을 일이었던 셈이다.
37년 동안 5·18 헬기 사격이 역사 속에 묻힌 배경을 연합뉴스 기사 기록을 토대로 되짚어 봤다.
◇ 헬기 사격 증언 확보하고도 검찰 군 해명대로 수사결과 발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은 1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21일 오후께 광주 동구 주변을 돌아다니던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다는 일관되게 진술했다.
이는 당시 육참 차장이 '미온적 작전을 하지 말고 무장헬기와 전차를 동원, 강경진압하라'는 지시를 내린 지 바로 다음 날의 일이었다.
1994년부터 5·18 관련 고소·고발 사건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1995년 5월 '헬기 총기 난사'를 주장 피터슨 목사 조사를 시작으로 헬기 사격 목격자인 조비오 신부 등 시민 다수를 소환해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목격자들에게 군 해명을 상세히 설명하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집중적으로 추궁하기도 했다.
결국 검찰은 1995년 7월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고 결론 내린다.
당시 검찰은 ▲ 군관계 자료상 실제 공중사격 실시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던 점 ▲ 헬기 피격 의심 피해자들이 모두 공수부대원 사격을 당했다는 반대 증언 확보 ▲ 사진에 찍힌 헬기 섬광이 충돌방지등 불빛임을 확인 ▲ 사망·부상자 등 기총사격에 피해라는 근거 발견 못 함 ▲ 기총사격으로 인한 대량인명피해와 피탄 흔적 등이 없음 등을 근거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수많은 목격 증언이 있었음에도 군 측 해명이 검찰 수사결과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 검찰 재조사에서도 현장조사 없이 "이미 결론 났다"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현장에서 직접 증거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재수사에 나선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1995년 11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특별법제정 지시로 불기소 결정을 번복하고, 11월 30일 전면재수사에 착수한다.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1차 조사에서 현장검증이 실시되지 않아 미흡한 수사였다는 지적을 의식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광주 현장조사를 대대적으로 펼쳤다.
검찰은 터미널, 금남로, 도청 앞, 도청상황실, 양민학살 현장인 주남마을·송암동 등을 잇달아 조사했지만 최근 37년 만에 185발의 총탄 자국이 발견된 전일빌딩을 조사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현장조사에 나선 검찰은 당초 "헬기 기총소사도 조사해 규명해야 할 대상"이라고 못 박았지만, 5·18 당시 상황을 10여개의 주요 사건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헬기 사격 내용은 제외된다.
결국 재수사 검찰은 헬기 기총소사설과 관련해 "지난번 수사(1차 수사)에서 이미 결론이 난 줄로 안다(헬기 기총소사설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는 뜻)"며 등한시했다.
두 차례 검찰 조사에서 수많은 증언에도 불구하고 서로 진술이 엇갈리고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묻힌 '헬기 사격'의 진실은 전일빌딩 10층에 진실을 간직한 채 22년여동안 잠들게 됐다.
이번에 최소 150개의 탄흔이 발견된 전일빌딩 10층은 1980년 5·18 이후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밖으로 밀려났다.
광주시와 5월 단체는 전일빌딩 10층에서 37년동안 숨겨져 있을지 모를 총알을 발굴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할지 여부를 조만간 상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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