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밤을 꼬박 새는 22시간의 마라톤 조사를 받고 13일 오전 7시 50분께 서초동 본사 사옥으로 돌아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61.구속기소) 씨와 삼성그룹 사이의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해서다. 이 부회장은 전날 오전 9시 30분께 뇌물공여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했다.
특검은 13일 오후 브리핑에서 "조사할 내용이 많고, 핵심 내용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진술이 수사팀 요구와 일치하지 않아 조사가 오래 진행됐다"면서 "내일이나 모레쯤 이 부회장의 신병 처리 방향이 결정될 것 같다"고 밝혔다. 특검 관계자는 앞서 "이 부회장이 주요 혐의 사실을 부인했지만 다시 소환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재소환 계획이 없다는 것은 신병처리를 검토할 만큼 조사는 충분히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특검은 이르면 14일께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용 혐의는 당초 알려진 '제3자 뇌물공여'가 아니라 단순 '뇌물공여'인 것으로 전해졌다. 뇌물 혐의가 적용되면 삼성 측이 최 씨에게 지원한 돈의 실제 수혜자를 박 대통령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위증한 혐의도 받고 있다.
지금까지 특검은 2015년 7월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한 배경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이 부회장에 대한 혐의도 최순실(61.구속기소) 씨를 통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이끌어 내고 그 대가로 최 씨 측에 말(馬) 구입비와 승마 컨설팅비 명목으로 80억여 원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구속)을 통해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특검은 보고 있다. 특검이 박 대통령에 대한 뇌물 혐의를 입증하려면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검이 국가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과 이 부회장의 사법처리에 따른 경제적 여파 등을 정상 참작할 여지가 협소하다는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시점과,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독대한 시점이 혐의 유무 판단의 쟁점으로 부상해 있다. 두 사건의 선후 관계가 대가성 입증의 초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측은 혐의 사실을 부인하면서 오히려 정권이 자행한 '강요·공갈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정권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달라는 대로 돈을 줬다는 것이다. 삼성 측은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독대한 것이 2015년 7월 25일이고 합병은 같은달 10일에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합병이 성사되고 2주일 뒤 대통령을 만났는데 무슨 로비를 하겠느냐는 얘기다. 반면 특검은 삼성 측이 청와대로부터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약속을 받아놓고 최 씨를 지원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검은 최 씨의 조카 장시호(38.구속기소) 씨로부터 제출받은 태블릿 PC 분석과 삼성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이 부분과 관련된 정황증거를 여러 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이 일단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것 같다. 아무리 세계 일류기업 삼성의 경영권 승계자라 해도 죄가 있으면 사법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게다가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경우 최종 목표인 박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방향도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구속영장 청구와 사법처리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에서 구속영장 청구는 일종의 부가적 처벌의 의미를 갖고 있다. 현행 법률의 지향점이 불구속수사에 있기 때문이다. 사법기관 입장에서는 구속수사가 훨씬 편하겠지만 피의자는 상당한 고통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경우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차제에 형사소추의 기본인 불구속수사와 무죄추정의 원칙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최순실 사태로 국가경제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인지라 특검도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이 부회장이 구속된다면 삼성은 물론 국내외 관련 회사들에 엄청난 파장이 미칠 수 있다. 특검이 무려 22시간에 걸친 철야조사를 하고도 사법처리 방향과 시점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듯하다. 특검이 영장청구를 강행해도 법원의 실질심사를 통과할지는 불확실하다. 결국 특검이 확보한 증거들의 실증능력을 법원이 어느 정도 인정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와 별개로 법원이 이 부회장을 구속수사해서 얻는 법익보다 불구속 기소에 따른 국가경제적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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