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500일간의 긴 싸움…창원 케이비알 노사 평화 자리 잡을까

입력 2017-01-15 11:14   수정 2017-01-16 10:04

1천500일간의 긴 싸움…창원 케이비알 노사 평화 자리 잡을까

2012년 말 해고 사태 후 파업-폐업 반복…'일자리 보전' 어렵게 합의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약 1천500일 동안 노사분규로 파업과 직장폐쇄에 이은 폐업까지 반복해온 경남 창원 케이비알(KBR) 노사가 노조원 일자리 보전에 합의하면서 갈등은 외견상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랜 갈등 탓에 노사 간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 언제 불안한 평화가 깨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회사 생산직은 36명으로 규모는 작은 편이나 이례적으로 장기 노사분규를 겪은 사업장이라 더 이상 분규가 재발되지 않도록 지역사회에서도 힘을 모아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부당징계로 노사 갈등 촉발…1천500일 간 긴 싸움

케이비알은 완성차 등에 사용하는 볼베어링용 쇠 구슬을 전문으로 생산하며 한때 국내 점유율 80%를 기록할 정도로 독보적인 회사였다.

그러나 2012년 말 노사 관계가 틀어진 후 사정은 나날이 악화돼 지금은 공장을 돌릴 물량이 없어 다른 회사와 합병할 처지로 전락했다.

당시 사측은 노사 갈등을 유발하고 업무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노조 간부 4명을 해고하고 2명에게 출근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에 노조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는 사측의 해고와 징계가 부당하다며 복직을 판정했다.

노조는 이 사건 이후 케이비알 회장이 자신들을 눈엣가시로 여기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공장 설비를 삼경오토텍으로 옮기는 문제를 두고 서로 각을 세웠다.

삼경오토텍은 케이비알 회장의 두 아들이 지분을 49% 가진 인근 경남 밀양의 동종업체다.

노조는 "두 아들의 회사를 키워주려고 케이비알의 경쟁력 저하까지 감수한 채 소중한 회사 자산을 회장 마음대로 반출한다"며 반발했다.

이때 사측은 '기계반출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고 용역도 투입했으나 노조 저항에 부닥쳐 설비반출에 결국 실패했다. 이후 노사 양측 간 감정의 골은 한층 더 깊어졌다.

2015년 4월 사측이 재차 삼경오토텍으로 설비반출을 시도하자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사측이 직장폐쇄를 단행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노사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직장폐쇄와 파업으로 맞선 양측 간 갈등은 폐업 660일만인 올 2월 29일 회사 정상화에 서로 합의하면서 끝난 바 있다.

그러나 장기간 분쟁으로 인해 물량이 떨어져 나간 케이비알은 회사 정상화 이후 '수주절벽'에 신음하면서 공장을 가동하지 못할 상태가 됐다.

결국 사측은 경영난을 이유로 올 2월부터 다시 폐업에 돌입하고 직원 36명을 전원 해고하기로 했다.

대신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은 삼경오토텍에 일자리를 마련해주기로 했다.

노조는 '회장에 대한 믿음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해고 뒤 이직은 믿을 수 없으며 어떻게든 케이비알을 살리겠다'며 반발했다.

'이직 권고'와 '해고자 신분 수용 불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노사 양측은 지난 9일 일자리 보전을 골자로 한 합의서를 조인했다.




사측이 해고예고통보서를 받은 직원 36명을 삼경오토텍에 출장 보내는 형식으로 일자리를 보전해주기로 한 것이다.

또 물량을 받지 못해 사실상 공장 가동이 멈춘 케이비알은 조만간 삼경오토텍과 합병하기로 했다.

만약 합병이 무산될 시 출장 직원 전원은 삼경오토텍에 고용 승계되거나 케이비알로 복직하게 된다.

노조는 케이비알 소속 신분을 버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으며, 사측 입장에서는 노조 저항 없이 순조롭게 폐업에 돌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합의서 조인에도 노사 불신 여전…전문가들 "인적·제도적 개선 필요"

이로써 2012년 말 이후 1천500일 가까이 이어진 노사 양측의 갈등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케이비알 이종철 회장은 "나름대로 노조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해고 대신 이들의 일자리를 보전해주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하지만 노조가 합의안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경우가 많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말 정산이 끝나는 대로 삼경오토텍과 합병절차에 돌입할 것"이라며 "오랜 기간 분규를 거치다 보니 노조는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심정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노조 관계자는 "이곳 직원들은 평균 근속연수가 15년이어서 회사를 향한 애정이 그만큼 크다"며 "케이비알이라는 법인을 살리면서 직장도 잃지 않는 방법으로 합의서를 마련해 서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도 회장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며 "합병이 무산될 경우 회장이 다시 폐업을 시도할까 봐 우려되지만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케이비알 사태와 같은 장기 노사분규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사업주 부당행위에 대한 검찰의 적극적 기소, 노동 전문 법원 신설, 분쟁 발생 시 사업장의 내부 경영정보 의무 공개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김태욱 변호사는 "사업장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검찰은 소극적 수사·기소를 하는 경향이 있다"며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해도 재수사를 지시해 불기소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사분쟁이 발생하면 해당 사업장에 대해 알아보려 해도 공시된 자료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며 "프랑스처럼 분쟁 발생 시 회사 비용으로 회계사를 선임해 경영상태를 분석한 뒤 이를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장상환 명예교수는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을 무시하고 수백만∼수천만원에 불과한 벌금을 낸 뒤 버티기로 돌입하는 사업주가 많다"며 "지노위 판정을 법원 판결처럼 구속력이 있게 정비하고 사업주가 불복할 시 사업장 폐쇄 등 실효성 있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노사분규가 법원으로 넘어갈 시 이를 가정법원에서 처리하는 실정"이라며 "노동 전문 법원을 신설해 노사분규만 전문으로 다루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사업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검찰 처벌, 사업장 경영정보 공개 등에 관한 지적이 과장됐다는 시각도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검사와 근로감독관이 다를 수 있지만 사업주가 처벌받는 경우도 많다"며 "누가 봐도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불기소 처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용부에 기업 회계정보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인력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부당노동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공시 자료 외 다른 경영정보가 추가로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home122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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