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을 더 늘리라는 미국의 압박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내정자는 12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미군은 조약 의무를 유지할 때, 동맹이나 파트너들과 함께 할 때 더 강하다"면서 "마찬가지로 우리 동맹과 파트너들도 그들의 의무를 인정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 분담금을 상당히 늘리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변한 것이다. 미군 철수에는 부정적이나 대신 동맹국들도 방위비 분담금을 늘려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내정자는 전날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더 노골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모든 동맹이 약속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의무를 다하지 않는 동맹에 대해 모른 척할 수는 없다"면서 "(동맹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 같은 오랜 친구들 입장에서도 불공정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차기 미 정부가 정식 출범하면 주요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을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한국도 비켜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봐야 한다.
해외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트럼프는 나토와 아시아 동맹들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여러 차례 제기하며 정당한 몫을 내지 않으면 미군 철수도 불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특히 한국이 주한미군 인건비의 50%를 부담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왜 100% 부담은 안 되느냐'고 황당한 반문을 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가 한국을 지목해 방위비 분담금을 문제 삼은 것은 우리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신중하고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입장이 강경한 만큼 일단 방위비 협상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트럼프가 주도하는 '위력 과시' 분위기에 휩쓸려 혹여라도 무리한 요구를 수용해서는 한 될 것이다. 한미 군사동맹의 상호 이익이란 것은 꼭 방위비 분담금만 갖고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매 등 미국 측에 생기는 파생적 이익도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방위사업청이 설립된 2006년부터 작년까지 10년 간 한국은 미국에서 모두 36조 원어치가 넘는 무기를 사들였다고 한다. 이는 한국의 작년 한해 국방예산(38조원)과 비등한 규모다. 두 번째 무기 수입국은 비교 자체가 안 될 만큼 미미한 액수라 하니 사실상 대부분의 무기를 미국에서 구매했다고 봐야 한다. 전체 무기 구매액의 74%인 26조9천여억 원이 정부보증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는 한미동맹이라는 '특수관계'가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 17조1천억 원이 소요되는 평택 미군기지 조성비 중 우리 측 부담금은 52%인 8조9천억 원에 달한다. 미국이 부담하는 8조2천억 원은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비일 뿐이다.
정부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주둔비의 추가 부담을 요구할 경우 아예 '방위비 지출장부'를 보여주면서 적극적으로 설명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방위비 분담금 비율이나,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다 미국산 무기 구매비, 카투사(주한미군 배속 한국군) 운영비 등을 산입하면 우리 지갑은 이미 충분히 열려 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2013년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방위비 분담금 비율은 0.068%로 일본(0.064%)보다 소폭 높고, 독일(0.016%)과 비교하면 4.3배 수준이다. '2016 국방백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2.40%(2015년 기준)로 일본(1.00%), 독일(1.09%), 대만(1.98%), 영국(2.05%)과 비교하면 최고 2.4배나 된다.
미국도 상호이익을 존중해온 한미동맹의 오랜 전통을 무리한 증액 요구로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방이란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나라'라는 뜻이다. 상대방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만 관철하려는 것은 동맹국이나 우방국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트럼프 정부의 출범을 앞둔 지구촌에서는 이미 미국의 지나친 자국 우선주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초강대국의 국격에 맞게 외교·안보 협상에서도 품위 있고 이성적인 자세를 견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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