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거래 어려움…조세·자국산업 보호 '장애물'
교역량은 제재 이전과 비슷하나 호전 흐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지난해 1월 16일(한국시간 1월 17일) 이란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풀렸다는 '총성'이 울리자 한국 기업도 앞다퉈 이란으로 향했다.
중동에서 한국 기업의 주 무대였던 걸프 지역이 저유가로 각종 사업이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되면서 베일에 싸였던 이란이 제재 해제와 함께 말 그대로 '블루오션'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망한 것으로 점쳐졌던 건설·토건 회사뿐 아니라 상사, 금융, 에너지 등 각 분야의 한국 기업이 새로 열린 이란 시장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테헤란을 달려갔다.
제재 해제 당시 이란 진출의 전초기지였던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선 "사업이 되든 안 되든 이란은 일단 가봐야 한다"는 말이 절대 명제처럼 여겨졌다.
지난해 5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정상 방문은 이들 기업의 '이란 러시'에 불을 붙였다.
비단 한국 기업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이란 비즈니스'는 저유가로 침체한 중동 시장의 돌파구로 보였다.
그러나 꼭 1년이 지난 지금 한국 기업이 받아든 성적표는 냉정했다.
한국과 이란의 교역량을 살펴보면 작년 1∼11월까지 수출은 33억2천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2% 감소했다. 반면 이란으로부터 수입은 40억5천만 달러를 기록해 76.8% 늘었다.
제재 해제 이전인 2015년 한국의 대이란 무역은 13억6천만 달러 흑자였지만 올해는 7억 달러 안팎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는 제재 해제로 이란에서 들여오는 원유와 원자재는 크게 늘었지만, 한국의 대이란 주 수출 품목인 자동차 부품, 가전제품 등의 수출은 정체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제재 해제의 효과가 이란 내수까지 본격적으로 미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다만, 월별 집계를 보면 한국의 대이란 수출의 감소세가 줄어드는 추세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금융거래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미국 금융기관을 통한 송금은 제재 해제 대상이 아닌 데다, 제재가 풀린 유럽 금융기관도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1년이 지났지만 선뜻 이란과 거래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한국은 원화 결제 계좌와 유로화 송금이라는 우회로를 마련했으나 이용 실적이 저조하다.
A 종합상사의 테헤란 지점장은 "이란 리알화는 시장환율과 공식환율의 차가 15% 정도에 달해 우회 결제를 이용하려면 환차손을 감당해야 한다"며 "유로화 송금을 이용했다가 미국 정부가 제재 위반이라고 판정하면 거액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의 불확실한 조세 제도도 새로 발을 디딘 한국 기업엔 '미스터리' 수준이다.
B 건설사 테헤란 지사장은 "이란은 법인세, 개인 소득세가 높은 편이기도 하지만 고세율보다 까다로운 것은 과세 액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라며 "다른 기업의 사례를 전혀 참고할 수 없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란 정부도 외국 기업의 이런 불만에 조세 제도를 투명하게 정비하고 예측할 수 있게 집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란 정부의 경제 정책 원칙인 '저항 경제'라는 점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완제품에 대한 관세장벽을 더 높이고 있는 데다, 외국 회사가 이란 현지 기업과 합작하도록 해 자국산 부품을 최대한 많이 쓰고 기술을 이전하는 조건을 엄격히 지키도록 한다.
C 제조업체 테헤란 지사장은 "이란이 핵 협상을 타결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난을 해결하려고 원유 수출을 재개하기 위해서였다"며 "마치 두바이처럼 외국에 자국 경제를 개방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박 대통령의 정상 방문 시 '42조 원 대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고 홍보됐지만, 실제 성사된 사업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
올해 1월 현재 진전을 본 이란 내 사업은 이스파한 정유공장(대림산업·2조3천억 원), 선박 10척(현대중공업·8천400억 원), 시르잔 복합화력발전소 양해각서(대우건설), 조선소 개발 기본합의서(대우조선해양), 원유·가스전 사전자격심사 통과(가스공사·포스코대우) 정도다.
그나마 제재 해제 뒤 최대 규모 수주로 꼽히는 대림산업의 정유공장은 이 회사가 이미 해제 이전부터 공을 들여온 사업이다.
D 건설사 테헤란 지사장은 "박 대통령의 정상 방문 때 이란 측에 제안서를 낸 사업까지 실적으로 서둘러 잡았던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말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상당수 주재원은 서울 본사로 돌아가 이란 사업을 지속해야 하는지를 놓고 심각한 논의를 벌였다.
이란 시장이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 포기할 수는 없지만, 기대만큼 실적이 시원치 않았던 탓이다.
E 종합상사 테헤란 지사장은 "제재 해제 효과가 빠르지는 않지만,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며 "중동 최대의 인구와 자원을 가진 블루오션임은 확실하지만 넘어야 할 파도가 그만큼 높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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