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반가운 이한치한(以寒治寒)의 현장 '홍천강꽁꽁축제'
(홍천=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동장군이 기세 좋게 돌아왔다. 올겨울 최강의 첫 한파! 영하 10도와 20도 사이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온 세상을 꽁꽁 얼렸다. 이한치한(以寒治寒)! 얼음판 위로는 찬바람을 넘어 신바람이 모처럼 쌩쌩 불었다.
“반갑다, 추위야! 고맙다, 한파야!”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겨울다운 겨울! 기후 온난화 영향으로 겨울축제들은 한동안 미뤄지고 또 미뤄지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시작하려던 홍천강꽁꽁축제도 같은 처지였다. 지난 1월 6일로 1차 연기됐다가 13일로 재차 미뤄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천우신조랄까, 고진감래랄까. 개막일에 맞춰 기온은 일거에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철철 흐르던 홍천강은 빠르게 결빙되며 겨울의 본모습을 회복했다. 맨손으로 노트에 메모하기조차 힘들 만큼 차가운 엄동(嚴冬)의 날씨. 꽁꽁축제도 모처럼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개막 사흘째인 1월 15일 대낮의 홍천강꽁꽁축제 현장.
홍천읍내를 관통하는 홍천강의 남산교와 홍천교 사이의 축제장에는 신명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그중 인파로 가장 붐빈 곳은 맨 아래에 있는 부교 낚시터. 폭 80m, 길이 8m 크기의 이 부유식 임시 구조물에는 130여 명의 겨울 강태공들이 몰려들어 물속의 송어와 치열한 수싸움을 했다. 지름 20cm 크기의 낚시 구멍은 모두 120여 개.
부교 곳곳에 동그랗게 뚫린 이들 구멍마다 인공 미끼가 매달린 낚시줄이 드리워졌다. 강태공들은 이 줄을 들었다 놨다 하며 송어 유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낚시질하는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양반 자세로 근엄하게 앉아 구멍을 예의주시하는 강태공이 있는가 하면, 아예 바닥에 납작 엎드려 얼음물 속을 뚫어지라 들여다보는 낚시꾼도 많았다.
“왔다! 왔어!”
긴장의 침묵이 흐르던 부교 분위기가 낚시꾼의 환호성에 갑자기 요동치듯 흥청거렸다. “
“잡았네! 잡았어!”“올려! 얼른 들어 올리라고!”
바늘 끝에 매달려 낚시 구멍에서 세차게 펄떡이는 송어에 구경꾼들도 함께 들떠 응원의 소리를 높인다.
남편과 춘천에서 왔다는 박혜경(53) 씨는 “송어낚시가 처음인데 두 마리나 낚았다”며 “야, 재밌다! 재밌다!”를 득의양양 연발한다.
두 시간 동안 무려 15마리나 잡아 올려 동행친구들로부터 일거에 ‘어신(漁神)’ 칭호를 받은 박득영(41·평택) 씨는 비법을 묻자 “없어요! 그냥 운이 좋았지요, 뭐!”라며 겸손한 듯 여유만만한 얼굴이다.
◇ 짜릿한 손맛의 맨손 송어 잡기
강원도는 말 그대로 국내 ‘겨울축제의 1번지’다.
화천산천어축제, 평창송어축제, 인제빙어축제, 대관령눈꽃축제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홍천강꽁꽁축제는 이중 후발주자에 속한다. 2012년 첫선을 보인 꽁꽁축제는 홍천의 자랑인 인삼과 겨울철 물고기인 송어를 만나게 해 강원의 대표 축제 중 하나로 해마다 거듭나고 있다.
1월 30일까지 계속된 올해 축제의 주제도 ‘홍천 인삼송어를 잡아라’다. 6년근 홍천 인삼을 먹인 햇송어만 낚시터에 넉넉히 풀어놓아 다른 축제와 차별화를 꾀했다.
연구 결과 인삼송어는 일반송어에 비해 항산화 기능이 60%가량 높게 나타나는 등 노화방지와 피부미용에 탁월하고, 먹을 때 고기의 탄력성과 씹힘성이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다고 홍천군은 자랑한다. 축제장에 방류하는 송어는 매년 30t 정도.
홍천강꽁꽁축제의 핵심으로는 아무래도 얼음낚시와 맨손인삼송어잡기를 꼽아야 한다. 물론 빙판 놀이터에서 즐기는 4륜오토바이 타기, 4륜자전거 타기, 전동자동차 타기, 그리고 강변에서 즐기는 당나귀 타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됐다.
남산교 근처에 설치된 황금빛 초가집과 새하얀 빙벽 작품 역시 인기 포토존으로 방문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이 가운데 볏짚 지붕을 인 채 널따란 얼음판에 나란히 늘어선 세 채의 아담한 삼간초가는 농경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들에게 아득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초가집 뒤로 담장처럼 서 있는 길이 30여m, 높이 3m가량의 빙벽에는 물구나무서듯 수직으로 뻗어내린 고드름들이 기념사진의 멋진 배경이 돼 줬다.
이번 축제 기간 내내 방문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대표적 프로그램은 ‘맨손인삼송어잡기’였다. 얼음낚시장 바로 옆의 강변에 설치된 가로 10m, 세로 10m의 체험장에서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일곱 차례씩 맨손송어잡기 행사가 진행됐다. 매번 풀어 넣은 송어는 대략 100마리.
“준비됐나요?” “예!” “그럼 입수! 지금부터 1분 동안 잡으세요!”
사회자가 송어잡기 시작 신호를 던지자마자 가슴 장화를 갖춰 입은 채 사각의 인공 어장 밖에 서 있던 참가자들은 “야!” 하는 함성과 함께 일제히 물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살얼음 추위도 잊은 채 도망치는 송어들을 뒤쫓느라 신바람이 났다. 인삼송어는 덩치가 일반송어보다 작은 편이다. 하지만 힘이 좋아 잡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입수 20여 초 만에 대어를 거뜬히 잡아 올린 채학철(54·경기도 안산) 씨. “참 빠르기도 하시다”는 주위의 부러움 섞인 찬사에 “이 정도야, 뭐!”라며 장난기 섞인 얼굴로 연신 싱글벙글한다.
그 반면에 바로 옆의 박윤숙(46·경기도 성남) 씨는 “초보자라 그럴까요. 미끄러워서 도대체 송어가 안 잡혀요”라며 발을 동동 구르며 기분 좋은 울상을 지었다. 팔꿈치를 걷어붙인 채 아빠와 함께 물속으로 뛰어든 신예준(11·경기도 수원) 군은 “추워요! 그래도 좋아요! 신나요!”라며 줄행랑치는 송어 무리의 뒤를 개구쟁이처럼 졸졸 따라다닌다.
◇ 인삼송어, 홍천 경제 살리는 ‘겨울 효자’
잡는 맛이 있으면 먹는 맛도 있으렷다! 송어잡기 체험장 바로 옆에 있는 대형 향토음식점은 송어의 맛을 즐기려는 미식가들로 온종일 시끌벅적 넘쳐났다. 얼음낚시와 맨손잡기로 손에 쥔 인삼송어를 가져와 송어회, 송어구이, 송어매운탕 등의 요리로 그 식감을 맘껏 즐기는 사람들이다.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온 박수경(42) 씨는 “인삼송어회라 그런지 색깔부터가 더 맛깔스러워 보여요.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삽시간에 그릇을 말끔히 비웠는걸요”라며 흡족하게 미소 짓는다.
아내, 두 자녀와 같이 축제장을 찾은 김종철(40·서울) 씨는 “송어를 잡는 손맛도 손맛이지만 장작불에 구워 먹는 송어구이의 입맛 또한 그만이네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송어는 겨울철에 열리는 축제들이 내세우는 대표적 어종이다.
평창송어축제, 파주송어축제, 포천송어축제, 가평송어축제, 청평송어축제, 연천송어축제처럼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축제 외에도 가평자라섬씽씽축제, 정선고드름축제, 무주남대천얼음축제 등이 송어를 축제의 한 주인공으로 삼는다.
홍천강꽁꽁축제는 송어를 축제의 주역으로 하되 3회 때(2014년)부터 인삼 송어를 도입했다. 인삼과 송어를 앞세워 전국의 시군 지자체 중 면적이 가장 넓은 이 고장의 특성을 널리 알리고 지역경제도 활성화하는 등 홍천의 ‘겨울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축제 때마다 매년 50여만 명이 찾아와 200여 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낸다. 이에 힘입어 꽁꽁축제는 강원도 문화관광축제 중 우수축제로 선정된 바 있다.
◇ 송어가 숭어 된 사연은
잠시 송어 이름에 얽힌 오해를 살펴보자. 민물에 사는 송어와 바다 어종인 숭어를 헷갈리는 일이 잦았다. 대표적인 예가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의 대표곡인 ‘송어’. 이 곡은 근래까지만 해도 ‘숭어’로 잘못 알려졌다. 오스트리아는 바다와 거리가 먼 내륙국이어서 숭어가 살 수 없는 곳이다. 슈베르트의 ‘송어’를 ‘숭어’로 잘못 부른 첫 장본인은 일제강점기의 일본인들이다. 원곡인 독일어 제목이 ‘송어’라는 뜻의 ‘Forelle’이고 영어 제목 역시 ‘송어’인 ‘Trout’이지만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바다와 친숙해서인지 이를 ‘숭어’로 오역해 버렸다. 해방 이후에도 줄곧 ‘숭어’로 불리던 이 곡은 오류가 끊임없이 지적되자 2011년 정부가 공식 수정에 나서 중고교 음악 교과서에서 제 이름을 되찾게 됐다. 수십 년 만에 '송어'가 '숭어'로 행세하다가 본디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편 바다와 맞닿은 전북 부안에서는 연말마다 ‘부안 설(雪) 숭어 축제’가 열린다.
◇ "이상고온으로 얼음 낚시터 맘껏 활용 못 해"
겨울철 기온상승의 영향으로 축제의 핵심인 얼음낚시터를 맘껏 운영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홍천강의 축제장 일원에는 수천 명씩 들어가 송어낚시를 즐길 수 있는 빙판이 해마다 드넓게 조성되는데 안전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활용기회를 그만큼 잃을 수밖에 없다.
홍천문화재단의 전명준 대표는 “첫 번째 개막 예정일을 목전에 둔 12월 23일 난데없는 비가 내려 물난리가 나고 이후 10cm가량 얼었던 얼음이 1주일 동안의 이상고온으로 다시 녹아 떠내려가는 등 축제를 앞두고 조마조마한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그간의 고충을 들려줬다.
지난해 초에는 따뜻한 날씨 탓에 축제를 전면 취소해야 했다.
올해의 경우 두 차례의 연기 끝에 하늘의 도움으로 개장에는 성공했으나 얼음낚시터를 축제기간 내내 맘껏 사용하진 못했다. 이유는 안전기준에 미달하는 얼음의 두께 때문. 방문객들이 마음 놓고 낚시를 즐기려면 20cm 이상이 돼줘야 하나 이에 못 미치는 날이 적잖았다. 이는 스노월드, 얼음썰매장, 얼음축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 대안으로 올해 처음 등장한 시설이 바로 부교 낚시터다. 얼음이 충분히 얼지 않더라도 얼음낚시에 버금가는 손맛을 만끽하도록 인공 시설을 제작해 강물에 띄웠다. 홍천군은 기후 온난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시설들을 날로 발전시켜 방문객들이 어떤 여건에서든 축제를 즐기게 할 방침이다.
다행히 얼음두께 미달로 텅 비어 있던 얼음낚시터는 축제 개막 나흘째인 1월 16일 오후부터 부분 개장해 주최 측을 안도케 했다. 얼음이 두껍게 꽁꽁 얼 때는 최대 800여 개의 낚시 구멍을 뚫어 방문객들에게 짜릿한 손맛을 느끼도록 했다.
노승락 홍천군수는 “올해도 날씨 때문에 초반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며 “청정한 홍천강의 자연과 넉넉한 인심을 만날 수 있는 겨울의 대표 축제로 꽁꽁축제가 거듭날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2월호 [축제]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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