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진출 1천여개사 고율관세·인허가 변화 주시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 영국이 유럽연합(EU)의 단일시장이나 관세동맹에서 완벽하게 이탈하는 경착륙형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로 방향을 잡자 일본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지지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에 진출한 일본기업들은 유럽사업 전략의 재검토를 준비 중이다.
하드 브렉시트가 현실이 되면 영국에서 EU 역내로 수출할 때 고율의 관세가 부과됨에 따라 영국에 생산과 판매 거점을 둔 일본기업은 유럽시장에서 다른 나라 업체와 경쟁하는 데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영국은 영어가 공용어이고 자유로운 사업환경이 정비돼 있어 2015년 10월 기준으로 1천21개의 일본회사가 유럽사업 거점을 영국에 두고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자동차업체만 해도 도요타, 닛산, 혼다가 영국에 공장이 있다. 도요타는 영국서 19만대를 생산해 75%를 유럽으로 수출하고 혼다도 영국 생산분의 80%를 유럽대륙으로 수출한다.
영국에서 연간 50만대를 생산해 유럽에 수출하는 닛산은 작년 10월 카를로스 곤 사장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 EU 탈퇴 교섭 결과가 영국에서의 투자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요구했다.
이에 영국 정부가 EU 이탈 후에도 영국의 경쟁력을 유지하겠다고 확약하자 닛산은 영국 북부 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시카이 차기모델을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은 아직 유효하다.
유럽에서 사업하는 많은 일본 금융기관은 EU 회원국 한 곳에서 사업 인가를 받으면 다른 회원국에서도 금융서비스를 할 수 있는 '단일패스포트' 면허제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나 다이와증권그룹은 영국에서 단일 면허권을 받았지만, 앞으로 영국이 단일시장에서 철수하면 이 면허가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노심초사한다.
이들 금융기관은 향후 유럽 지역 영업이 제한될 사태에 대비, 영국 이외 EU 국가의 단일패스포트를 취득하거나 런던을 대체할 거점을 EU 역내에 설치하는 등 전략 수정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은 2016년, 미즈호은행은 올 들어 각각 네덜란드의 유럽 거점명을 'MUFG뱅크(유럽)'과 '유럽미즈호은행'으로 변경, 유럽 역내를 관할한다고 밝히며 하드 브렉시트에 대비했다.
제약업계는 의약품을 심사하는 유럽의약품청(EMA)이 런던에 있는데, 브렉시트 때에는 EMA가 다른 나라로 옮겨갈 수 있는데다 의약품 승인제도가 EU와 영국이 크게 달라지면 영향이 크다고 우려한다.
물론 작년 6월 영국의 국민투표로 EU 탈퇴가 결정된 뒤 반년이 지났지만 현재 일본기업들 가운데 영국에 둔 유럽사업 거점을 옮기는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영국의 경제활동 침체가 피할 수 없다는 견해가 많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가 작년 12월 유럽진출 일본계 기업 1천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조사결과를 보면 유망한 판매국가 순위에서 영국은 전년 8위에서 11위로 후퇴했다. 또 영국에 진출한 제조업체 40% 가까이가 부품공급망의 재검토를, 20% 이상이 물류경로 재검토를 검토 과제로 꼽았다.
이에 비춰볼 때 당장은 하드 브렉시트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일본기업들은 영국과 EU에 걸친 유럽사업 거점망 재구축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영국 직접투자 규모는 적지 않다. 2015년 연말 일본의 영국에 대한 투자 규모는 10조7천448억엔(약 112조원)에 달한다. 일본의 대외투자 규모로는 미국과 중국, 캐나다에 이은 네 번째이다.
일본정부 관련부처도 브렉시트 결정 뒤인 작년 9월 유럽에 진출한 많은 일본기업에게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영국과 EU 국가들에 촉구하면서 관세나 투자 규칙 등이 변화되는지를 주시하고 있다.
tae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