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운 경제'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히브리 구전문학에 전해지는 이야기 중 릴리스(Lilith) 신화가 있다.
아담의 첫 아내이자 이브보다 먼저 창조된 최초의 여성인 릴리스는 아담과 평등하게 창조됐다. 그러나 아담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덴동산을 스스로 뛰쳐나갔다.
자유를 얻은 릴리스는 그 대가로 저주를 받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죽이고 아이의 피와 영혼을 빨아먹은 뒤 그렇게 얻은 에너지로 매일 백번씩 아기를 출산하고 그 아기를 다시 죽여야 하는 무시무시한 저주다.
신간 '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운 경제'(세종서적 펴냄)의 저자인 체코 경제학자 토마스 세들라체크와 오스트리아 언론인인 올리버 탄처는 릴리스 신화에서 현대 시장경제의 모습을 발견한다.
자유시장경제의 최고 원칙인 자유는 사람들에게 풍요를 안겨줬지만 수많은 위기의 원인이 됐고 지나친 경제적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책은 이처럼 신화와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 같은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저자들은 경제가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보고 영화 속 환자가 소파에 누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듯이 자본주의라는 환자를 소파에 눕히고 자본주의가 앓는 정신질환을 진단한다.
가장 명백한 증상은 양극성장애, 일명 조울증이다. 점점 빨라지는 호황과 불황의 경기순환은 양극단의 혼돈을 만들어낸다.
부정적 극단에서 현실을 왜곡하게 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야기하는 공포증도 있다. 위기 시대에 공포 마케팅이 성행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성격장애도 앓고 있다. 인간성과 이타주의, 건강한 이성보다는 이기주의와 잔인한 경쟁 등이 득세를 하고 있다.
평소에는 국가와 사회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경제위기 때 그랬듯이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평소 무시했던 아버지(국가, 사회)에게로 도망쳐 해법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자기중심적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배명자 옮김. 384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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